로버트 김 美로 떠나 “정보기관, 불필요한 도청에 힘쏟고…”

  • 입력 2005년 11월 2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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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집을 찾은 딸과 같은 심정이었다.”

24일 오전 미국으로 출국할 로버트 김(김채곤·金采坤·65·사진) 씨는 “환대해준 조국과 국민에게 거듭 감사드린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미국에서 한국 무관에게 기밀문서를 넘겨준 혐의로 7년 10개월의 수감 생활과 1년 3개월의 보호관찰 기간을 거쳐 6일 조국 땅을 밟은 김 씨는 23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18일간 조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느낀 감회를 털어놨다.

그는 “나를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돼지저금통을 깨뜨려 성금을 내준 초등학생이나 꼬깃꼬깃 접은 지폐를 모금함에 넣어 준 할머니들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면서 “국립중앙박물관이나 민족사관고 등을 가보지 못한 것도 못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후원회의 물질적 도움을 사양했다. 자유인으로서 자립할 수 있다고 스스로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도 출국을 앞두고 불안감을 내비쳤다.

“미국에서도 편안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전과자로 직업을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꼭 미국에서 일을 찾을 생각은 없습니다. 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야죠.”

그는 청소년 교육사업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매주 e메일을 통해 회원에게 발송하는 ‘로버트 김의 편지’(수신 신청 및 후원 www.robertkim.or.kr)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그의 첫 작품이다. 그는 이 편지를 통해 청소년 교육에 대한 평소 생각을 담담히 풀어낼 계획이다.

오랫동안 미국 정보기관에서 일했던 김 씨는 한국의 정보기관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으나 완전한 공유라고 할 수 없다”며 “한국 정부는 더 많은 예산을 들여서라도 독자적인 정보 수집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정보원의 도청 사건과 관련해 “정보기관이 불필요한 곳에 역량을 쏟고 정부는 오히려 이 문제를 크게 확대해 정보기관의 힘을 빼놓고 말았다”면서 “정보기관은 확고한 지도력 아래서 독립성을 유지하며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일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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