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넷파라치 “너, 딱 걸렸어!”

  • 입력 2005년 11월 24일 03시 01분


코멘트
‘친절한 보아씨’가수 보아가 4월 일본에서 단독 콘서트를 하던 중 일본 팬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인터넷에 올린 사진. 이를 포착한 누리꾼들은 “왜 일본 팬들에게 굽실거리는가”라고 비판했다. 사진 출처 다음
‘친절한 보아씨’
가수 보아가 4월 일본에서 단독 콘서트를 하던 중 일본 팬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인터넷에 올린 사진. 이를 포착한 누리꾼들은 “왜 일본 팬들에게 굽실거리는가”라고 비판했다. 사진 출처 다음
#1. 최근 며칠간 인터넷 검색어 순위 1위는 탤런트 장서희(33). 추천 검색어로 ‘장서희 부은 얼굴’이 함께 제시됐다. 발단은 9일 방송된 SBS ‘생방송 TV연예’ 프로그램 진행자인 장서희가 평소보다 부은 얼굴로 출연한 것. 방송 직후 누리꾼(네티즌)들은 화면을 캡처해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고 “몸이 아파 얼굴이 부었다”는 장서희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는 곧바로 인터넷 매체를 중심으로 기사화됐다.

#2. 4월 7일 가수 보아(19)는 일본 도쿄 요요기 경기장에서 콘서트를 가졌다. 며칠 후 인터넷 게시판에는 ‘보아가 공연 중 일본 팬들에게 180도에 가까운 절을 했다’며 사진이 파노라마로 올라왔다.

디지털카메라나 휴대전화 카메라(일명 폰카), 화면 캡처 프로그램을 통해 누구든지 파파라치가 될 수 있는 ‘넷파라치 시대’임을 보여 주는 사례다.

파파라치는 이탈리아어로 파리처럼 왱왱거리며 달려드는 벌레란 뜻. 1997년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죽음으로 내몬 것도 파파라치였다. 기존의 파파라치가 공인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직업적인 사진가들이었다면 2005년 한국에서는 ‘만인 파파라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옥에 티
누리꾼 파파라치는 TV 드라마나 영화 속 장면에서 실수를 발견해 이슈화하기도 한다. 탤런트 오윤아의 경우 한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에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출연했을 때 무릎 부분에 멍든 자국이 카메라에 잡혔다. 사진 출처 다음

○ 과거 들추기… 흠 찾기…

누리꾼들은 네이버, 다음 등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별도로 마련된 게시판을 통해 너도나도 연예인들의 사진을 게시한다. 누리꾼 파파라치의 유형은 크게 △연예인들의 학창 시절 사진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한 성형 의혹 제기 △가족과 함께 있는 모습 등 사적인 공간을 촬영한 폭로 △TV나 영화의 제작 실수를 찾는 경우 등의 세 가지로 나뉜다.

특히 연예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과거 사진. 포털 사이트별로 하루 평균 100여 건이 신규 등록되는 이런 종류의 게시판에는 여자 연예인들의 ‘과거’ 사진이 집중적으로 오른다. 탤런트 한예슬, 장서희를 비롯해 최근에는 노현정 아나운서의 고교 졸업사진이 화제였다.

드라마, 영화의 경우도 누리꾼 파파라치의 감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누리꾼들은 드라마 속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화면을 캡처해 인터넷에 게시한다. 최근 MBC ‘음악캠프’나 드라마 ‘달콤한 스파이’ 등의 음부 노출 사건은 누리꾼 파파라치가 발굴해 낸 ‘작품’들이다.

3색 얼굴
탤런트 장서희가 9일 자신이 진행하는 SBS ‘생방송 TV연예’에 얼굴이 부은 채 출연했다. 장서희 측은 “감기 몸살로 몸이 아파 얼굴이 부었다”고 해명했으나 누리꾼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형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사진 출처 다음

○ 참을 수 없는 인터넷의 가벼움?

누리꾼들은 완벽해 보이는 연예인들의 허점이나 빈틈을 보며 쾌감을 얻는다. 이는 사진을 함께 ‘공개재판’하면서 연예인의 권위를 무너뜨리려는 일종의 도전인 셈. 연예인의 과거 사진을 인터넷에 게시해 봤다는 대학생 최지현(24) 씨는 “누리꾼 모두가 마치 시민기자 같다”면서 “굳이 특정 연예인의 안티가 아니더라도 내 사진으로 여론이 형성된다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사실 유포, ‘마녀사냥’식의 연예인 죽이기 등은 초상권 침해, 명예 훼손 등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김형지(25·서울 성북구 안암동) 씨는 “연예인들의 과거 사진이 인터넷에 게시되면 대부분 자세히 보지도 않고 다들 성형했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180도 인사’ 사진으로 논란을 빚었던 보아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 측은 “아직까지 고소한 적은 없지만 사진 한 장으로 이미지에 치명적 손상을 입을 경우 법적 대응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고교 졸업 때의 사진이 떠돌며 성형 의혹이 제기된 KBS 노현정 아나운서는 “내가 떳떳한데 법적 대응 같은 것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

포털 사이트 다음의 최정훈 뉴스팀장은 “누리꾼들이 올린 사진 중 근거 없이 비방을 하는 경우엔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지만 명확한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누리꾼들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어 게시물 삭제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연예인 사진을 올리는 누리꾼들의 심리는 고발이라기보다는 사이버 공간을 놀이터로 생각하는 누리꾼들의 ‘유희’”라며 “그러나 이러한 누리꾼들의 유희를 언론매체들이 진위를 파악하지 않은 채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