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규형]‘게으른 교수’ 차등적 연봉제 도입을

  • 입력 2005년 11월 2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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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학생 신분으로 대학에 다니던 20여 년 전만 해도 대학 교수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직업이었다. 교수의 본분인 교육과 연구에 아무리 소홀해도 그것을 제어할 만한 메커니즘이 전무한 가운데 25년간 교내 논문 두세 편 쓴 교수부터 휴강을 밥 먹듯 하는 교수에 이르기까지 대학은 게으르고 무능한 교수들의 천국이었다. 방만한 시스템 아래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본분을 다한 교수도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들은 정말로 사명감이 투철했던 것 같다.

이러한 대학의 풍경은 최근 급격하게 변했다. 교수평가제가 어느 정도 정착됐기 때문이다. 기존 교수들에게 전면적으로 소급 적용할 순 없지만 신임 교수들은 교수평가, 특히 연구업적평가를 통해 재임용과 승진이 결정되기 때문에 나태한 모습을 보이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의 대학이 제자리를 찾으려면 갈 길이 멀었다는 얘기들이 들린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최근 기자들과 만나 “1주일에 하루 나오는 서울대 교수들이 있다. 창피를 좀 주라”며 불성실한 일부 교수를 비판했다 한다. 이는 서울대만이 아닌 한국 대학 전반의 문제다. 정 총장이 “연구하는 데 바쁘다고 학생들 교육에 소홀해서야 되겠느냐. 연구 실적으로만 교수를 평가하다 보니 그런 모양”이라고 말한 것은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지적이다. 학교와 학생에 대한 기여가 천차만별인데도 교수들이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것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일주일에 하루 학교에 나오고 그 이외의 날은 골프치고 노는 교수와 이를 악물고 학교 교육과 행정에 힘을 기울이는 교수의 대우는 현재 거의 차이가 없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할 묘책이 있는가. 완벽하진 않지만 연봉제와 임금피크제의 요소를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이 있긴 하다. 대다수 대학은 이미 교수평가제를 통해 각 교수에 대한 종합평점을 확보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필자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연구 40%, 교육 40%, 봉사 10%, 교육행정 10%의 가중치를 두고 학기마다 평가한다. 또한 일주일에 최소 4일은 학교에 나와 강의하는 것을 장려하는 제도도 있다. 문제는 연구 평가는 대단히 강화됐지만 다른 분야의 평가는 실시는 하되 현실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한국의 대학은 당장 능력과 기여도에 따른 차등적 연봉제를 실시해도 될 준비가 돼 있지만 현실 여건상 이것을 채택하는 대학은 거의 없다. 대신 거의 모든 대학이 근무연한에 따른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계적인 호봉제가 대학 사회의 활성화를 막는 하나의 원인이 된다.

현실적인 해결책으로 호봉제와 연봉제를 적절히 절충해 대학의 안정화와 활성화를 동시에 이끌어 낼 것을 제의한다. 그렇게 되면 교수가 일주일에 하루를 나오건 이틀을 나오건 거기에 대해 대학이 강제할 수 있는 방안은 없어도, 하루 이틀만 나와 깎이는 종합평점이 연봉에 부분적으로나마 영향을 미치기에 교수들의 노력과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외국에서는 이미 교육 능력 평가가 교수의 재임용과 승진에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당장 그렇게까지는 못한다 해도 일단 교육 수행 능력도 연봉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할 수는 있다. 세 번의 나쁜 교육평점을 받은 교수에게 감봉 조치를 하는 대학도 있다 하나 현 단계에서 연봉제적 요소만 일부 도입하면 감봉이라는 강한 조치 없이도 교육에 교수들이 더 신경을 쓰게 할 수 있다.

대학은 교육과 연구의 전당이다. 대다수 교수가 자발적으로 이러한 본연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지만 정 총장이 우려하는 상황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몇 가지 제도적 개선과 교수 개개인의 노력을 통해 충분히 극복될 수 있는 문제들이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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