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는 왜 김정일 답방에 집착했나

  • 입력 2005년 11월 23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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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맞은 2001년 6월을 전후해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은 한 달 새 5차례, 그해 말까지 10여 차례나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해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약속이란 다름 아닌 서울 답방이었다.

DJ는 왜 그토록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집착했던 걸까.

DJ 정부가 2001년 초 언론사에 대해 세무조사와 함께 도청까지 한 데는 김 위원장의 답방 분위기 조성 의도가 있었다는 증언이 최근 나옴에 따라 DJ 측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답방에 집착한 배경에는 드러나지 않은 정치적 복선이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DJ가 김 위원장의 답방 이행을 요구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 정착 기틀을 확고히 하고, 그 결과물로서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고자 했기 때문이란 설명이 그동안의 일반론이다.

DJ는 특히 ‘역사에 남는 대통령’을 상당히 의식했다. 그는 2001년 9월 발표한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우리 역사에서 세 번의 통일시도가 있었다. 신라의 통일과 고려의 통일은 성공했지만 세 번째인 6·25 전쟁은 성공하지 못했다. 세 번 모두 무력에 의한 통일 시도였으나 네 번째 통일 시도는 반드시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말을 한 일이 있다.

이를 두고 당시 야당에서 “북한이 소련 등 외세를 업고 남침해 일으킨 6·25를 통일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와 별개로 이 발언은 DJ가 한반도 역사 이래 ‘3번째 통일 주역’을 의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DJ가 ‘통일대통령’이 되려고 한다거나 ‘장기집권’을 꿈꾼다는 주장이 공개적으로 나오기도 했다. 2000년 10월 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 대변인은 논평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이 장기집권 도모와 통일대통령 추진 등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씻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DJ정부 측은 이를 “터무니없는 비방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DJ가 노벨평화상 수상과 함께 현실 정치에서 김 위원장의 답방을 실현시켜야만 한반도 평화정착의 제도화가 가능하고 또 이를 공인받을 수 있다는 기류가 존재했다.

한반도 평화정착의 제도화는 남한의 경우 헌법 개정을 포함해 사회구조의 본질적 변화가 초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 위원장의 답방이 곧 개헌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한나라당으로서는 DJ의 ‘통일대통령, 장기집권’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야권 인사는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대통령들은 퇴임 후 실질적인 집권연장이나 안전판 마련을 위해 내각제 등의 개헌 시도를 했다. DJ도 예외라고 단언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답방에 대한 DJ 측의 집착이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였다는 점도 의구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DJ 정부의 사정에 정통했던 한 인사는 “2001년 중반 이후 답방 회의론이 퍼지고, 일부 인사들이 청와대 측에 ‘빌어도 빌어도 김 위원장은 안 온다. 이제는 포기하라’는 건의를 전달했지만 권력 핵심층은 오히려 화를 내며 이를 일축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이와 관련해 본보도 2001년 11월 15일자와 11월 30일자 사설을 통해 “김 위원장은 서울에 오지 않는다. 답방에 대한 미련을 버리라”고 촉구한 일이 있다.

그러나 DJ 정부는 이에 아랑곳없이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와 도청까지 하면서 답방 분위기 조성에 신경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적 복선이 없는, ‘한반도 평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단순한 염원’ 때문이었다면 반인권적 범죄인 도청까지 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새삼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별개로 당시 DJ는 측근 실세들이 연루된 각종 게이트(권력형 비리) 등 국내정치적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김 위원장의 답방을 절실히 필요로 했다는 지적도 있다.

윤승모 기자 ysmo@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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