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입김이 투자 발목”]주주몫 챙겨주다 성장기회 놓쳐

  • 입력 2005년 11월 23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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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이동통신 서비스의 종주국이다.

지금은 음성 중심의 2세대 서비스와 일부 동영상 서비스가 가미된 2.5세대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한 단계 진화해 화상 통화가 가능한 3세대 광대역 부호분할다중접속(WCDMA)은 2002년 말 일본, 2003년 3월 유럽에서 먼저 시작됐다.

한국은 2003년 12월 시작했지만 현재 가입자는 3000명도 안 된다. 내년에는 3세대 WCDMA보다 앞선 3.5세대 초고속하향패킷(HSDPA)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지만 이동통신 절대강국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주식시장의 압력이다. 외국인 주주들은 WCDMA 서비스에 수조 원 단위의 막대한 설비투자가 필요하지만 이익이 당장 가시화되지 않으니 차라리 그 돈을 주주에게 배당하라고 요구했다.

외국인 지분이 50%에 육박하는 SK텔레콤과 대주주가 KT인 KTF는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경영에 대한 증시 압력 커져

소버린이 SK㈜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선 2003년 상장기업의 자사주 매입은 봇물을 이뤘다.

2003년 시가총액 상위 20대 기업의 순이익은 18조6065억 원. 이 가운데 자사주 매입에 6조3505억 원, 현금배당에 4조7187억 원을 사용했다. ▶그래픽 참조

‘자사주 매입 후 소각’ 기준으로는 순이익의 43.6%, 자사주 매입 기준으로는 59.5%가 사용됐다. 2000년 이전에는 현금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비율이 10%대였다는 점과 비교해 보면 엄청나게 높아진 것이다.

KT&G는 2004년에 순이익(4723억 원)보다 많은 6494억 원을 현금배당(2373억 원)과 자사주 소각(4121억 원)에 사용했다. 이는 1년 동안 기업활동으로 벌어들인 이익뿐만 아니라 과거에 벌어서 쌓아 놓은 돈까지 주주에게 나눠줬다는 뜻이다.

○ 설비투자 재원이 줄어든다

KT는 작년 순이익 1조2555억 원 가운데 6323억 원(50.3%)을 현금배당으로 나눠줬다.

순수하게 현금배당으로 순이익의 50% 이상을 돌려준 기업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문제는 KT가 향후 휴대인터넷(와이브로)과 광대역통합망(BcN) 등에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주주중시 경영’ 때문에 현금배당을 크게 늘리고 있다는 점.

이런 와중에 KT는 올해 2월 사상 초유의 전화불통 사태를 맞았다.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유선전화에 대한 기본적인 설비투자를 게을리 했기 때문이었다.

자회사인 KTF도 내년에 WCDMA 망(網) 구축에 1조 원 이상의 투자가 필요하지만 이미 2005년 경영실적에 대한 주주환원 비율을 50%로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그만큼 설비투자 재원이 줄어드는 것이다.

○ 미래 국가경쟁력에 악영향

증시에서는 주주환원 비율이 높아진 데 대해 과거 국내기업이 외면해왔던 주주중시 경영이 정착되는 과정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하지만 기업 현장의 목소리는 상당히 다르다.

B그룹 고위관계자는 “삼성전자는 2002∼2005년 9조4000억 원을 투입해 자사주를 매입했고 이 가운데 4조 원은 소각했다”며 “만약 이 돈이 어떤 형태로든 국내산업에 재투자됐다면 한국의 경제상황은 지금보다 나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식 주주중시 경영이 아직 더 성장해야 하는 한국적 현실과 충돌하는 셈이다.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윌리엄 라조닉 교수도 연구논문을 통해 “증시는 기본적으로 단기적 성과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이것이 국가의 장기 성장에 필요한 연구개발(R&D)과 신규사업 개척을 소홀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두영 기자 nirvana1@donga.com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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