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비만(肥滿)과의 전쟁

  • 입력 2005년 11월 22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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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살집’으로 보는 시대상의 변화는 흥미롭다. 르네상스기의 여인들은 풍만한 살집으로 건강미와 섹시함을 자랑했다. 그 시절, 서양의 명화들에 나오는 누드가 다 그렇다. 이 땅의 대한제국 때, 카메라에 잡힌 민중의 얼굴은 한결같이 깡마르고 움푹 팬 얼굴이다. 못 먹고 굶주린, 지금의 북녘 인민들의 얼굴과 다르지 않다. ‘먹고 죽은 귀신이 화색도 좋다’는 속언도 그런 비참한 기아(飢餓)와 절망의 표현이리라.

▷오늘날은 거꾸로 과체중과 비만을 걱정하는 시대다. 기아로 허덕이고 ‘먹고사는’ 문제로 고민하고 내달리는 사이, 어느 새 비만을 걱정하는 나라가 되었다. 더 극적인 역전(逆轉)도 있다. 미국의 경우 비만이 아예 저소득층으로 옮겨 가 버린 것이다. 가난한 부모가 돈과 시간이 없어 방치하는 사이 아이들은 값싼 정크 푸드, 패스트푸드에 빠져 든다. 칼로리만 높은 먹을거리는 빈민가 아이들을 사정없이 살찌운다. ‘굶주린’ 계층에 비만이 번져 가는 역설을 낳은 것이다.

▷정부가 민관 합동의 국가비만관리위원회를 만들고 비만 치료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쪽으로 간다는 보도다. 아이들이 자기 전 시간대인 밤 9시 이전의 패스트푸드 광고를 금지하고, 모든 식품에 칼로리와 지방 함유량을 표기하는 방안도 검토된다고 한다. 비만과의 전쟁에 정부도 거들고 나선 것이다. 수면무호흡증, 뇌중풍, 당뇨병 등이 있는 비만의 경우, 보험 혜택을 주는 것이 오히려 의료 재정을 아끼는 방법이라는 주장이 의사들 사이에 제기돼 왔다.

▷21세기 유망 사업에는 반드시 ‘건강’ ‘미용’ 분야가 꼽힌다. 삶의 질을 따지고 참살이(웰빙)가 추구되면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이 최고가 되는 것이다. 비만을 이기는 것은 건강을 얻고 미용도 성취하는 것이니 일석이조(一石二鳥)다. 비만은 분명히 ‘질병’이다. 성인병의 전 단계인 대사증후군의 원인이 되고, 만병(萬病)을 부르는 공적(公敵)이 된 지 오래다. 정부가 나서는 것을 말리지는 않겠다. 다만 비만관리위나 예산 확보 등을 빌미로 ‘정부의 비만’이 가속화되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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