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반병희]아프간의 ‘과거사 광란극’

  • 입력 2005년 11월 22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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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는 없는 것이 많다. 산에는 나무가 없고 강에는 물이 없다. 가정집엔 식량이 없고 병원엔 약품이 없다. 시장에는 생필품이 부족하다. 그 대신에 총은 넘쳐 난다. 지뢰는 또 좀 많은가. 비라도 오면 지뢰 홍수로 줄줄이 사고가 터진다. 문맹률은 84%이고 영아사망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5년 전까지만 해도 아프간은 현대식 시가지에 풍부한 문화유산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깨끗한 나라’ ‘과거와 현대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땅’으로 불리는 아시아 최대 관광국 중 하나였다. 70여 개 종족이 이슬람교 불교 기독교를 믿으며 사이좋게 살아가는 모습은 다민족 다원주의의 성공 모델로 불렸다. 인종 간, 종교 간 갈등을 빚던 이웃 나라들과 비교되기도 했다. 유럽인들 사이에서는 ‘명상(冥想)을 즐기려면 아프간으로 가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하지만 헬레니즘에서 불교를 거쳐 이슬람에 이르기까지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가진 아프간은 1980년 이후 쿠데타와 소련 침공, 내전을 겪으면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2005년 11월 아프간의 시계는 고장 난 바늘로 멈춰 있다.

소련의 침공을 물리치고 재도약할 기회가 있었지만 1996년에 등장한 탈레반 정권은 이슬람 원리주의에 바탕을 둔 극단적 개혁과 과거사 청산에 매달렸다.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필자는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확인했다. 시민들은 소련에 빌붙었던 배신자들에 대한 가혹한 응징에 열광했다. 시민들의 호응에 힘입어 탈레반 정권은 경제 발전과 정치 안정 대신 역사 바로 세우기와 국가 정체성 회복을 내세웠다. 종족 간, 지역 간 갈등을 부추겨 아프간 사회를 극단적인 ‘네 편’ ‘내 편’으로 갈랐다. 우상 배격의 미명 아래 세계적 문화유산인 바미안 불상을 폭파했다. 여성을 직장에서 내쫓고 하향평준화 평등교육을 강요했다. 비판적 언론은 아예 씨를 말려 버렸다.

탈레반 정권 패퇴 5주년을 맞아 필자는 지난주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찾았다.

국제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을 보호하던 탈레반 정권의 운명은 미국에 의해 끝났지만 극단주의자들이 벌인 광란극의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었다. 시민들은 여전히 ‘공포’ ‘불신’ ‘분열’의 악령에 시달리고 있었고 거리에서 만난 시민의 얼굴은 절망 그 자체였다. 이런 공포와 불신은 탈레반에 협력한 전력(前歷) 여부를 놓고 서로 죽이고 죽는 피 흘림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학에선 학생들의 학력 저하로 고등학교 수준의 수업을 하고 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이다. 탈레반이 물러난 뒤 여성들은 부르카로 불리는 차도르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언제 다시 이슬람 전통을 내세운 ‘개혁세력’이 등장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오랜 인습으로 여성들은 여전히 부르카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칭칭 감고 있다. 많은 여성이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분신자살하고 있다. 한 여교사는 필자에게 “탈레반은 여성으로 태어난 내 운명을 저주스럽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한때 ‘한국의 탈레반’으로 불렸던 386집권세력이 벌이고 있는 과거사 청산과 교조주의적 개혁 작업은 한국 사회에 어떤 후유증을 불러올까. 이미 대한민국은 ‘정신적 내전(內戰) 상태’라는 평가가 국내외서 나오는 상황에서 아프간의 비극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반병희 사회부 차장 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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