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의 필독서 50권]<30>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입력 2005년 11월 22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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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들으며 자기 경험의 한계로만 이야기한다. 정말이지 다양한 학생을 만나면서, 언제나 가슴 한편으로 두려웠던 것이, 나의 한마디 한마디가 저 아이들의 삶에 어떤 흔적으로 남겨질까 하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무엇이든지 될 수 있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씨앗’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잠재적 가능성이 무한한 그들이 두렵고 존경스럽다.

습관처럼 산에 올랐다. 자기의 색깔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뚜렷이 나타내는 가을의 단풍은 나무들의 개성을 볼 수 있어서 좋다. 가을 나무는 자신의 색깔을 잎으로, 앙상한 가지로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좋다. 그런데 산은 그들 각각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모두의 모습으로 가슴에 안고 포용하며 조화롭게 숲을 만든다. 노란색은 노란색이어서 좋고, 분홍색과 빨간색은 그 색이어서 좋다고 인정한다.

내가 욕심이 많았나 보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내 기준과 내 판단이 옳다고 그들 ‘씨앗’에게 나를 닮으라고 강요했다. 나를 닮지 않는 아이들에게 ‘너는 왜 그런 모습과 색깔이냐’고 짜증 내며 화를 냈던 것 같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문학 에세이다. 서강대 영문과 교수인 저자가 살아가면서 외롭거나 슬프거나 기쁘거나 일상으로 읽었던 책들에 대한 감상과 책 안내이다. 그 책들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우리에게 같이 놀자고 손을 내민다. 여러분이 이 책을 읽다가, “같이 놀래”라며 그가 손을 내밀면 그가 읽었던 책을 읽어 보고 같이 놀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가면서 자꾸 ‘오만과 편견’의 표피만 키워, 나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나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사는 어른들에게 얼굴 색깔보다는 자전거 색깔을 보고 번지르르한 말보다는 마음을 들을 줄 아는 아이들의 반듯한 이야기가 새삼스럽다.”

아이들을 나의 머리와 기준과 눈으로만 보았던 것 같다. 아이들은 숲의 나무들같이 자신의 색깔을 나타내기 위해 아픔을 참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잊었다. 나도 고등학교 시절에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못하게 하는 어른과 학교와 사회에 불만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참으로 많은 나무를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서 보았고 숲도 보았다. 때로는 삶에 좌절하고 그것을 꿋꿋하게 극복한 ‘시’라는 나무를 보았고 존재의 고통과 사랑을 이야기한 ‘소설’이란 나무도 보았다. 그리고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사상과 인생’의 나무도 보았다. 끝으로 이들 모두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숲을 보았다. 그 ‘숲’에 사는 사람은 삶과 세상에 좌절하고 분노한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으로 삶의 고통과 분노와 좌절을 극복한다.

이 책에서 나는 우리가 갖고 있는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나자는 저자의 ‘손 내밂’을 받았다. 나는 그의 제안대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의 나무부터 보러 가기로 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이야기하고 ‘학생들이기 때문에 틀렸다’는 교사로서의 오만과 ‘나와 다르기 때문에 이상하고 다르다’라며 바라보고 차별하는 편견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수석 인천 동산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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