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황유성]法 위로 달리는 中 관용車

  • 입력 2005년 11월 2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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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컴퓨터 사업을 하는 교민 Y(45) 씨는 5년 전 중국에서 다시는 운전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두 차례나 교통사고를 ‘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사고는 Y 씨가 중국에 진출한 지 3년째 되던 1998년 12월 베이징(北京) 시 서쪽 하이뎬(海淀) 구 야윈춘(亞運村·아시아경기선수촌) 부근에서 났다. 진베이(金杯·중국제 소형 승합차)를 몰고 네거리를 지나던 그는 신호를 무시하고 과속으로 달려온 산타나 승용차(중국 생산 폴크스바겐 차종)에 부딪혀 차가 전복됐다.

외국인 차량이라 하이뎬 구 외사과 공안(경찰)이 사고조사를 했다. 이틀 뒤 구(區)공안국의 출두 명령을 받은 Y 씨는 조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이 가해자로 둔갑해 3개월 운전면허 정지와 함께 상대 차량 수리비 4000위안(약 52만 원)을 물도록 돼 있었던 것.

기가 막힌 그는 공안에게 항의하며 서명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자 공안은 오전 내내 그를 기다리게 한 뒤 “내일 다시 공안국으로 나오라”며 돌려보냈다.

그런 식으로 8일간 공안국에 불려 다닌 그는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회사 일을 보지 못해 생기는 손해가 더 컸기 때문. 뒤늦게 상대 차량이 베이징 시 노동국의 관용차라는 것을 알게 됐다.

2000년 6월 발생한 두 번째 사고도 피해자였으나 가해자로 바뀌어 1만 위안(약 130만 원)을 물어야 했다. 상대는 베이징 시 법원 관용차였다. 결국 Y 씨는 차를 팔고 운전을 단념하고 말았다.

베이징에서 광고업을 하는 교민 J(46) 씨는 2년 전 조선족 직원과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다 사고를 당했다. 과속으로 달리던 승용차의 바퀴가 직원의 발등을 밟고 지나간 것.

조선족 직원은 멈춰 선 차량의 번호판을 보더니 아픈 발을 절룩거리며 “그만 가자”고 J 씨의 등을 밀었다. 공안 차량이었기 때문. 옌볜(延邊)이 고향인 조선족 직원은 공안이 발급하는 ‘짠주정(暫住證·임시 거주증)’이 없는 불법 취업자였다. 짠주정이 없으면 베이징 근교 창핑(昌平)의 수용소에 감금돼 강제노역을 한 뒤 고향으로 추방되므로 공안에게 항의해 봐야 결국 자기만 손해였기 때문.

중국 택시 운전사들은 아우디(중국 생산 폴크스바겐 고급차종)나 산타나를 몰고 과속 난폭운전을 하거나 신호를 지키지 않고 불법 갓길 운전을 하는 차량은 100% 관용차라고 귀띔한다. 최근 중국이 관료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관용차 남용에 칼을 들이댔다. 전국적으로 350만 대에 이르는 관용차 중 지방행정기관의 청장과 국장급 이하 간부의 관용차 사용을 금지하기로 한 것. 매년 3000억 위안(약 39조 원)에 이르는 유지비를 줄이기 위한 목적도 있다.

그러나 시민들은 그런 정도로 관용차의 횡포가 줄어들 것으로는 믿지 않는 표정이다. 베이징의 택시 운전사 왕(王)모 씨는 “백성 위에 군림하려는 관의 의식 개혁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사실 중국에서 관이 백성 위에 군림해 온 것은 역사적으로도 오랜 전통이다. 그만큼 고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민들의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개혁 개방 이후 많은 게 달라졌다. 수조 원대의 재산을 주무르는 젊은 자산가들이 대거 탄생하고, 외국 자본이 끊임없이 밀려들면서 급속하게 글로벌 경제에 편입되고 있다. 그만큼 중국 안팎에서 사회 각 분야의 리걸 스탠더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중국 당국이 관용차 횡포에 메스를 들이댈 수밖에 없었던 것도 바로 해외여행과 외국과의 교류로 눈이 높아진 시민들의 반발 때문이다. 관료사회의 후진적 행태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다른 분야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황유성 베이징 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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