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시효는 면죄부? 화성살인-도청사건 계기 논란

  • 입력 2005년 11월 2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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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 부녀자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은 영화 제목에 대해 “기억(추억)하는 것이야말로 응징의 시작이란 의미”라고 했다.

범죄는 시간이 지나면 증거도 없어지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사라진다. 법도 범죄를 잊는다. 공소시효제도 때문이다.

공소시효제도로 인해 아무리 흉악한 범죄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처벌이 불가능해지고 이 때문에 논란도 많다.

▽일정시간 지나면 처벌 불가능=1986년 9월 6일부터 1991년 4월 3일까지 모두 10명의 부녀자가 숨진 화성연쇄살인사건. 11월 14일로 9번째 살인사건(1990년 11월 15일 발생)의 공소시효(15년)가 완성됐다. 마지막 사건의 공소시효가 완성되는 내년 4월 2일 이후로는 연쇄살인범이 잡힌다 해도 처벌할 수 없다.


공소시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행 그대로
연장해야
폐지해야
잘 모르겠다


▶ 난 이렇게 본다(의견쓰기)
▶ “이미 투표하셨습니다” 문구 안내

1991년 3월 대구에서 5명의 소년들이 실종된 일명 ‘개구리소년 실종사건’도 2006년 3월이면 공소시효가 완성된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후반기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임동원(林東源) 신건(辛建) 전 국정원장이 15일 구속됐다. 하지만 애초에 검찰 수사를 불러온 김영삼(金泳三) 정부 때 도청팀은 면죄부를 얻었다. DJ 정부 전반기 국정원장들도 법망을 빠져나갔다. 이것은 모두 공소시효 때문이다.

도청(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대한 공소시효는 법 개정(2002년 3월) 이전에는 5년, 이후에는 7년이다. 따라서 2000년 11월 이전의 도청 행위는 처벌이 불가능하다.

▽“공소시효 제도 정비돼야”=공소시효의 기간을 규정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제249조는 1954년 일본의 형소법을 본떠 제정됐다.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는 15년, 무기징역은 10년 등이다.

공소시효의 존재 이유는 범행 후 오랜 시일이 지나 증거가 사라져 진실 발견이 어렵고, 범죄인 자신도 형벌에 상응하는 고통을 받았기 때문에 범인의 법적·사회적 안정도 존중돼야 한다는 것.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시대적 상황에 맞게 공소시효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살인사건만 해도 옛날과 달리 유전자(DNA) 보존이나 과학적 분석기법이 잘 정비돼 있다. 일본도 지난해 15년이던 살인 공소시효를 25년으로 늘렸다. 공소시효가 끝난 살인범들이 잇따라 자수한 것이 계기가 됐다.

문병호(文炳浩) 의원 등 열린우리당 의원 10명은 8월 17일 모든 범죄의 공소시효를 일괄적으로 5년씩 늘리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냈다.

이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 하창우(河昌佑) 공보이사는 “공소시효 연장에는 특별한 사회적 합의가 있거나 의미가 있어야 한다”며 “그때그때 다른 잣대를 들고 재단하려 든다면 법의 안정성이 흔들릴 뿐 아니라 헌법의 ‘소급입법 금지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말했다.

:공소시효제도:

확정판결 전에 시간의 경과에 의하여 형벌권이 소멸하도록 하는 제도. 공소시효 제도의 존재 이유는 범죄 발생 후 시간의 경과에 따라 △증거판단이 곤란하게 되고 △범죄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약화되며 △범죄 후 이어진 사실상의 상태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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