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단식(斷食)

  • 입력 2005년 11월 19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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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했던 권위주의 시절, 단식(斷食)은 야당 지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정치적 저항 수단이었다. 1983년 5월, 김영삼 전 대통령은 2년째 이어진 전두환 정권의 정치규제와 가택연금에 항거해 23일간 단식했다. 당시 언론 통제가 심해 외신에는 크게 보도됐지만 국내 언론엔 ‘한 정치인의 식사 문제’로 표현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민당 총재이던 1990년 10월 지방자치제 실시와 내각제 포기를 요구하며 13일간 단식 농성을 했다.

▷정치적 투쟁 방식으로 단식은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짧은 시간에 세상의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인지 최근에까지 정치인의 단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의 최병렬 전 대표는 2003년 11월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비리 특검 거부에 항의하는 단식을 했고, 전재희 의원은 올해 3월 행정도시 특별법 통과에 맞서 단식농성을 했다. 쌀 비준안의 국회 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의 단식은 오늘로 24일째를 맞아 YS의 기록을 깼다.

▷이번엔 중부권 신당인 국민중심당의 정진석, 열린우리당의 선병렬, 양승조 의원이 단식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행정도시특별법에 대한 위헌 여부 결정을 앞두고 있는 헌법재판소를 압박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들은 모두 충청권 출신이다. 그러니 어떤 명분을 둘러대도 결국은 지역구를 겨냥한 ‘선거용’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사진 e메일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단식 사실을 적극 홍보하는 것도 속 보이는 짓이다.

▷단식은 원래 종교적 수행(修行)이나 건강관리가 목적이다. 정치적 목적의 단식은 이미 유효기간이 지났다. 자유로운 의사 표시가 억압받던 시절의 단식은 감동을 주었으나 이제는 별로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정치 사회적 해결 수단이 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의원들이 법을 만드는 국회를 ‘여의도 단식원’쯤으로 전락시키고 있으니 진화(進化)가 더딘 하등(下等)의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시대착오를 보지 않기 위해 단식금지법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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