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미의 역사’…시대가 창조한 ‘美의 파노라마’

  • 입력 2005년 11월 19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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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 역사/움베르토 에코 지음·이현경 옮김/440쪽·3만9000원·열린책들

미래의 미술 사학자가, 아니면 우주에서 온 탐험가가 20세기를 지배하는 미의 사상을 ‘아주 멀리서’ 관찰한다면? 그래서 우리 시대의 미의 상징을 하나만 꼽는다면? 그는 아마도 헬레니즘 시대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상에 비견될 만한 것은 아름다운 경주용 자동차라고 말할지 모른다.

“나는 현대의 자동차가 고딕 대성당과 동급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명의 예술가들이 열정적으로 창안해 낸 한 시대의 위대한 창조물이다. 그 이미지는 대중의 소비 속에서 마법의 불을 지폈다.”(롤랑 바르트의 ‘현대의 신화들’)

그리고 이 미래의 방문객은 피카소의 그림과 동시대의 연애소설이 묘사하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동시에 발견하고는 또 얼마나 놀랄 것인가.

미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진리인가, 선인가, 숭고의 감정인가. 아름다움은 이성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인가. 순전히 주관적인 취향인가. 아니면 미와 추(醜)는 단지 상대적 거리감으로 서로를 담보할 뿐인가.

무수한 장르의 저술을 쏟아 내며 우리 시대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사상가로 군림하고 있는 저자. 미학의 심장부를 겨누는 그의 탐험은 이렇게 시작된다.

고대의 입상에서 오늘날 기계시대에 이르기까지 서구문화의 위대한 작품들을 더듬으며 시대와 문화에 따라 미의 사상과 관념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탐색한다. 밀로의 비너스에서 앤디 워홀의 ‘메릴린 먼로’까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카프카의 ‘유형지에서’까지 예술과 미에 대해 생각하고 기록한 모든 것을 펼쳐 보인다.

저자는 하나의 미적 이상이 지배적인 시대에서도 다른 미적인 관점들이 공존했으며, 그 이념들은 성장하고 쇠락하면서 치열한 경쟁 관계에 있었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18세기는 이성의 세기, 일관성 있고 냉철한 세기만은 아니었다. 계몽의 시대라는 냉담하고 차가운 허울 아래서 세련되면서도 잔인한 남녀들이 억제되지 않은 난폭한 열정과 혼란스러운 감정을 표출하고 있었다.

“계몽주의적 이성은 천재적인 칸트에게서는 밝은 측면을 갖고 있지만 사드 후작의 잔혹극에서는 불안하고 어두운 측면을 갖고 있었다.”

20세기 또한 ‘도발의 미’와 ‘소비의 미’ 사이에 극적인 투쟁의 장을 이루었다. 미래주의에서 입체파, 표현주의에서 초현실주의에 이르는 아방가르드의 도발은 이전의 모든 미적 규범을 파괴했다. 대신 그 자리에 정신병 환자의 꿈, 마약에 의해 암시된 전망, 그리고 무의식적 충동을 끼얹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놀랍게도 아방가르드의 미술 전시회를 관람하고 ‘이해 불가능한’ 조각품을 구입하면서도 매스미디어가 제시하는 미의 모델에 따라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머리 모양을 바꾼다. “이와 같은 모순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이 20세기의 전형적인 모순이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소설 ‘장미의 이름’의 작가답게 저자는 이 시대에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다. 수많은 사람이 상상하듯 중세는 ‘어두운’ 시대가 아니었다. 시와 회화에서 중세의 인간은 눈부시게 환한 모습을 드러낸다. 중세의 세밀화에서 놀라운 것은 어두컴컴한 방에서 제작되었을지도 모르는 그 그림들이 빛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중세는 음유시인들과 기사들의 사랑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 찬 세계였다. 중세 기사와 귀부인 사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것은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열정과 달콤한 불행의 근원으로서 낭만적 사랑의 관념을 탄생시켰다. “암흑의 시대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중세는 사실 빛과 사랑에 대한 동경으로 충만한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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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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