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함께한 韓美정상 “격식 따지지 말자” 노타이 회동

  • 입력 2005년 11월 1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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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오른쪽)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7일 경북 경주시 현대호텔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호텔 컨벤션 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이날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강조했다. 경주=석동률 기자
노무현 대통령(오른쪽)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7일 경북 경주시 현대호텔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호텔 컨벤션 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이날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강조했다. 경주=석동률 기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7일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 오찬과 불국사 나들이를 하는 등 모두 4시간을 경주에서 함께 보냈다. 양 정상은 이번까지 모두 5번 만났지만 이렇게 회동 시간이 긴 적은 없었다.

양 정상이 이날 채택한 ‘경주 공동선언’은 정상들 간의 합의문 형태 중 가장 격이 높은 것이다. 이 역시 한미 정상의 돈독한 ‘우의’를 과시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격식 없는 정상회담과 기자회견=정상회담은 사전 합의에 따라 넥타이를 매지 않은 채 진행됐다.

낮 12시 15분 시작된 공동기자회견에선 양국에서 2명의 기자가 자국 대통령에게 질문한다는 원칙이 있었지만 한국 기자들은 2가지씩을 물었다. 노 대통령은 “왜 내게만 2개씩 묻느냐”고 농담했고, 부시 대통령도 통역을 통해 노 대통령의 ‘항의’를 전해들은 뒤 파안대소했다.

한편 부시 대통령이 대북 경수로 지원 문제에 관해 답변할 때는 ‘오역(誤譯)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적절한 시기에 대북 경수로 제공 문제를 ‘논의한다’는 답변을 ‘적절한 시기에 제공한다’고 통역이 잘못 말을 옮긴 것. 이에 청와대 측이 발언 원문을 확인해 정정했다.

미국 기자들이 이날도 이라크전쟁 정보 왜곡 문제를 집중 질문하자 부시 대통령은 “민주당도 나와 똑같은 정보를 봤다”며 강도 높게 반박했다. 일부 외신은 이를 ‘부시 대통령이 화났다’는 식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링컨도 공격받았다”=노 대통령은 회견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설명하면서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을 거론해 눈길을 끌었다.

노 대통령은 “링컨은 대통령 재임 시절 끊임없이 노예해방론자들에게서 인권과 노예 해방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심하게 공격받았다”며 “링컨이 노예 해방에 앞장서면 연방제로 지탱되던 미국이 분열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연방 통합을 우선순위에 두고 통합을 유지하면서도 점진적으로 노예제를 없애는 정책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 인권 문제에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자신의 입장을 노예제 폐지에 미온적이라는 비난을 감수한 링컨의 처신에 슬쩍 빗댄 것.

이에 미국의 D뉴스 기자는 “부시 대통령이 그의 말에 흔쾌히 동의할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고, 다른 미국의 유력 일간지 기자는 “비유가 적합하지 않다(not analogous)”고 평했다.

▽오찬과 불국사 관람=양 정상은 80분간의 오찬을 통해 정상회담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주요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19세기 말부터 한반도의 주도권을 놓고 전개되어 온 외세의 각축에 대해 설명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등 일본의 왜곡된 역사 인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에 부시 대통령은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인 뒤 “아시아 주요 국가들이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양 정상 내외는 오찬 후 불국사를 함께 둘러봤다. 불국사에 먼저 도착한 노 대통령 내외는 주지인 종상 스님의 안내로 대웅전에서 3배(拜)를 올렸다. 종상 스님은 “1배는 진리, 2배는 세계 평화, 3배는 인류의 번영을 위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도착한 부시 대통령 내외를 맞아 대웅전의 역사를 설명하기도 했다. 극락전을 거쳐 종각으로 이동한 양 정상 내외는 범종을 세 차례 타종했다.

노 대통령은 불국사 관람을 마친 뒤 부시 대통령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APEC 회의가 열리고 있는 부산으로 먼저 떠났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 내외는 불국사 합창단의 ‘청산은 나를 보고’란 합창을 들으면서 메밀차를 마시는 등 좀 더 머물렀다.

로라 부시 여사와 권양숙(權良淑) 여사는 이날 경주박물관에서 성덕대왕신종, 천마총 출토 유물을 같이 둘러봤다. 로라 여사는 대구가톨릭대 부설 영어마을의 수업에 참가해 학생들과 문답을 나누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자수 넥타이핀 세트를, 권 여사는 로라 여사에게 자개로 만든 경대인 ‘천복경’을 선물했다. 부시 대통령은 장식용 유리그릇을, 로라 여사는 핸드백을 노 대통령 내외에게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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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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