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준씨 “문화재 털이범 등쌀 못견뎌 가보 2000점 기증”

  • 입력 2005년 11월 1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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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여 년간 종가에 무려 17번이나 도둑이 들어 방마다 문고리 밑 문살이 성한 곳이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600여 년간 종가(宗家)에 쌓여 온 2000여 건의 고문서를 2000년 8월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한 진성(眞城) 이씨 대종손 이세준(李世俊·59·사진) 씨. 자신이 기증한 유물 중 110점을 엄선한 특별전 ‘옛 종가를 찾아서’ 전(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19일∼내년 2월 19일)을 앞두고 이 씨가 17일 유물 기증 사연을 뒤늦게 밝혔다.

진성 이씨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을 배출한 가문. 그 대종가는 경북 안동시 와룡면 주하리 주촌(周村·속칭 두루마을) 633에 있다. 대지 760평에 사당과 본채, 경류정(정자), 행랑채 등으로 구성된 남향(南向) 전통 기와지붕 건물로 1987년 경북도 민속자료 72호로 지정됐으며, 경내에는 천연기념물 314호인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런데 고문서 등을 노리는 문화재 털이범들이 이 종갓집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고 한다.

“선친께서는 1950년 6·25전쟁 중에 요절하시고, 조부께서도 1982년에 작고하셨으며, 저 또한 직장 관계로 부득이 객지 생활을 하는 바람에 사랑방을 비우게 돼 노모 혼자서 대종가를 지키게 되셨습니다. 그러자 집이 전국 문화재 전문 털이범들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툭하면 도둑이 들었습니다. 문화재 털이범들은 심지어 집안 벽을 허물어 구멍을 내는가 하면, 다락방 문짝을 통째로 떼어가기도 했어요. 집을 지키던 개를 독살한 일도 있었어요.”

결국 홀로 종가를 지키고 있는 노모의 신상까지 위험해졌다고 판단한 이 씨는 가보를 모두 기증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 씨는 “유물은 누가 갖고 있느냐보다 도난과 분실, 훼손하지 않고 영구히 보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며, 나아가 그것은 우리 민족의 공동 문화유산이므로 모두가 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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