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국가 자폐증’이라는 장애

  • 입력 2005년 11월 1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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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TV에서 본 영화 ‘말아톤’의 잔상(殘像)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자폐증이라는 단어를 접했다. 가까운 친구나 후배 중에도 자폐 장애아를 둔 경우가 없지 않아 ‘자폐’라는 단어는 유난히 가슴을 저미는 말이다.

그러나 이번은 그런 가슴 저밈이 아니었다. 프랑스의 지성으로 불리는 기 소르망 씨가 일간 르 피가로 기고문에서 파리 방화소요사태의 원인은 다름 아닌 ‘국가 자폐증’에 있다고 일갈했다. 자동번역 영어로 더듬더듬 읽을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그 글에서 소르망 씨의 분노를 느꼈다. 글의 제목도 ‘불타고 있는 건 바로 국가다’였다.

그는 “교외 지역 청소년들의 도시 게릴라전은 정치권과 일반 사회 사이에 놓인 총체적 단절 현상을 증명할 뿐”이라고도 했다. 총체적 소통 단절 현상은 무려 30년이나 진행돼 이젠 ‘국가 자폐증’이라는 장애단계에까지 이르렀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부끄럽지만, 필자는 자폐라는 장애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소르망 씨의 글을 읽고 미국자폐증협회의 웹 사이트에 들어가 벼락공부를 했을 뿐이다. 어린이든 어른이든 가장 전형적인 증세는 ‘소통(疏通) 장애’를 겪는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명심해야 할 것은 개개인마다 다양한 증상(spectrum disorder)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인종이나 종족, 사회적 배경, 수입, 또는 교육 정도, 그 어느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장애라는 지적도 있었다.

소르망 씨가 국가자폐증의 증거라고 단언한 파리 방화소요사태도 그랬다. 본보는 무슬림 청소년들의 방화사태가 계속되고 있던 6일 국제면 ‘World & Words’난에 ‘Rage of French youth is a fight for recognition(프랑스 젊은이의 분노는 인정을 위한 투쟁이다)’라는 워싱턴포스트의 글을 소개했다. 방화는 우리를 인간적으로 인정해 달라는 투쟁으로 볼 수 있다는 요지였다.

하지만 보도 직후 ‘프랑스 국경지역에 사는 한국인’이라고 밝힌 한 독자가 e메일을 보내 왔다. ‘인정 투쟁’은 구실일 뿐이라고…. 인도계나 동양계보다 프랑스어도 훨씬 잘하는 북아프리카 출신 무슬림들이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은 힘든 일은 하기 싫어하면서 대우만 받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독자의 e메일은 역설적으로 자폐증, 그것도 국가자폐증의 원인을 찾아가는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되새기게 해줬다.

대한민국은 어떨까? 필자의 눈에는 대한민국도 국가자폐증 환자다. 총체적 소통장애의 살아있는 현장이다. 하는 말로만 보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자폐의 장애를 가장 절감하는 것 같다. 그는 끊임없이 국민과의 소통 장애를 호소한다. 얼마 전에는 내년 초쯤 미래의 사회적 의사결정 구조에 대해 얘기하겠다고도 했다.

기대해 보려 한다. 소르망 씨는 국가자폐증의 유일한 치료법은 정치인들의 ‘자기비판’이라고 했는데, 노 대통령은 어떤 해답을 내놓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다만 자폐증은 ‘spectrum disorder’라는 것, 그리고 어느 한 가지 원인으로 재단할 수 없다는 점을 유념했으면 한다.

김창혁 국제부 차장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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