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나무처럼 버리는 삶

  • 입력 2005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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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자고 나면 거리에는 낙엽이 수북하다. 나무는 밤새 잎들을 많이도 떨어뜨렸다. 은성했던 잎들이 떨어져 버린 나무의 모습은 외로워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벼워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외로움과 가벼움은 같은 의미의 말인지도 모르겠다. 늦가을 나무는 내게 외로움과 가벼움은 같다는 의미 하나를 일러준다.

잎들이 지고 난 자리에는 파란 하늘이 잎처럼 열려 있다. 은성했던 잎들이 진 자리를 하늘이 내려와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마음이 참 넓다는 것이 늦가을 무렵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잎처럼 달린 파란 하늘은 그러나 떨어지지는 않는다. 오후 한 나절을 나무와 놀다가 어두워지면 다시 하늘로 돌아갈 뿐이다. 한나절 나무를 위로하다 돌아가는 하늘의 발길은 얼마나 가벼울까.

나는 언제나 나무가 윤회의 끝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나무보다 품위 있게 살다가 아름답게 사라지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살아서는 그늘을 드리우고 마지막에는 땔감으로 자신을 던지고 가는 나무의 모습은 언제나 내게 소리 없는 가르침을 전한다. 부처님처럼 살 자신이 없는 나는 나무처럼이라도 살다가 가자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 나무처럼 끝없이 나누며 살 수만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행복한 삶이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다.

불꽃으로 사라져 가는 나무의 모습을 보면서 내 마지막 순간을 그려본다. 나무처럼 그렇게 갈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상상 속에서라도 나는 나무처럼 그렇게 가볍게 떠나지는 못할 것 같다. 내 마지막 순간을 깊이 그리다 보면 언제나 눈물과 만나곤 한다. 집착이 많은 것이다. 마지막 이별의 그 순간이 너무 무겁게 다가와 나를 짓누르는 것이다. 슬픔과 두려움이 내 떠나는 순간의 모습일 것 같다. 그것은 결국 집착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가볍게, 그리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 탐욕도 집착도 벗어놓고 나무처럼 살다 가고 싶다. 나무가 잎들을 버리는 것은 어쩌면 자유의 길을 찾아가는 걸음인지도 모른다. 만추의 시간, 나도 나무처럼 서서 내게 있는 모든 것들을 즐겁게 버린다.

성 전 스님 불교방송 ‘행복한 미소’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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