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에 첫 여성문화센터 연 한국인 5명

  • 입력 2005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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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전용 시설인 여성교육문화센터의 건립과 운영을 담당한 한국의 젊은이들. 굿네이버스 카불지부의 홍정표 간사, 유경민 김현정 자원봉사자, 오은주 간사, 이병희 지부장(왼쪽부터)이 센터건물을 배경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카불=반병희 기자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전용 시설인 여성교육문화센터의 건립과 운영을 담당한 한국의 젊은이들. 굿네이버스 카불지부의 홍정표 간사, 유경민 김현정 자원봉사자, 오은주 간사, 이병희 지부장(왼쪽부터)이 센터건물을 배경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카불=반병희 기자
《현지어로 신이 버린 쓰레기라는 뜻의 ‘아프간’. 이슬람 원리주의의 탈레반세력이 패퇴하고 새 정권이 들어서 민주화과정을 밟고 있지만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불행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주 기자가 찾은 아프간엔 여성은 존재했지만 여성의 얼굴은 없었다. 종교와 전통의 굴레 속에서 아프간 여성 대부분은 얼굴부터 발끝까지 부르카(차도르의 일종으로 눈 부위만 망사로 되어 있는 옷)로 몸을 칭칭 감은 채 강제 결혼과 가난,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시장터를 찾을 때마다 남자들로부터 뭇매를 맞는 여자들이 눈에 띄었다. 견디다 못해 몸을 불태워 자살하는 여성들만 하루 10명 이상이다. 라자르 이디 아프간여성인권연맹 간사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카불에서만 300여 명의 여성이 이렇게 생을 마감했다.》

▽카불에 세워진 아프간 최초의 여성전용 공간=8일 수도 카불의 도심 카르테초르 지역에선 장갑차와 기관총을 동원한 다국적군과 현지 군경이 삼엄한 경비를 펴는 가운데 아프간여성교육문화센터 개관식이 열렸다.

부지 1016m²(약 300평)에 세워진 2층 건물엔 영화관과 컴퓨터 교실, 도서실, 강의실, 세미나실, 카페테리아, 쉼터가 갖춰졌다. 아프간 최초의 여성 전용 공간이다.

마수다 잘랄 여성부 장관, 오쿠다 노리히로(奧田紀宏) 아프간 주재 일본대사 등 참석자들은 감격스러운 듯 행사 도중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일부 여성들은 연방 눈물을 훔쳤다.

지난해 말 여자아이들만을 위한 초중등학교를 열었다가 주민들에 의해 불살라졌던 사실을 감안할 때 외국인들이 ‘여성전용’ 시설을 카불 한복판에 버젓이 세웠다는 것은 ‘충격’ 자체라고 현지 주재 러시아 노보스티 통신 기자는 놀라워했다. 일부 외신들은 ‘탈레반 잔당의 위협을 무릅쓰고 한국의 젊은이들이 아프간에서 혁명을 이뤄냈다’고 전했다.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 초청의 공식 행사 참석도 마다하고 오전 내내 자리를 지킨 오쿠다 대사는 “한국 젊은이들이 그 어느 나라 외교사절단도 이루지 못한 외교적 개가를 올렸다”며 “솔직히 일본인으로서 이들이 부럽다”고 털어놓았다.

▽모래바람에 맞서 일하는 5명의 ‘코리안’ 천사들=문화센터 개관은 한국에 본부를 둔 국제 비정부기구(NGO) 굿네이버스(회장 이일하)가 3년여의 노력 끝에 이루어 낸 결실이다. 이곳을 터전으로 한국인 젊은이 5명이 아프간 여성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나섰다.

굿네이버스의 이병희(32) 카불지부장, 오은주(30·여) 간사, 홍정표(29) 간사와 자원봉사자인 유경민(24·강남대 3년 휴학 중), 김현정(22·호서대 4년 휴학 중) 씨가 바로 그들. 모두가 미혼으로 이 지부장과 오 간사는 아프간 체류 3년에 이른다. 다른 사람들은 2∼3개월 정도.

이 지부장과 오 간사는 2년 전부터 아프간 정부 관리 설득작업에 들어가 교육부로부터 간신히 건축 부지를 받아냈다. 이어 ‘인류애’를 호소해 한국국제협력단(KOICA), 아프간 주재 일본대사관, 다국적군인 핀란드군에서 자금 지원을 받는 데 성공했다.

칠판이나 중고 컴퓨터 등은 한국에서 조달했고, 5명 모두가 인부를 도와 직접 방을 닦고 못질을 했다.

하루 2∼3시간만 전기가 들어오고 물 사정이 좋지 않아 아주 가끔밖에 샤워를 할 수 없으며 치안이 불안해 한 달에 한 번 현지인의 안내를 받아 시장을 봐야 하는 불편쯤은 이제 익숙한 생활의 일부가 됐다.

“이 정도는 어려움도 아니지요. 수천 년간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며 살아온 아프간 여성들에게 희망을 준다고 생각하면…. 다음 프로젝트는 아프간 최대 규모인 예브시니아 병원 운영의 현대화 작업입니다.”

모래바람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이 젊은이들은 건강해 보였다.


카불=반병희 기자 bbhe424@donga.com

▼“고통받는 사람 돌보는게 더 중요”▼

“돈은 나중에도 벌 수 있지만, 고통 받는 사람들은 지금 돌보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훤칠한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 유난히 흰 피부로 고생 없이 자란 듯 보이는 오은주 씨는 차분한 겉모습과 달리 아프가니스탄의 국제구호단체와 외교단은 물론이고 아프간 정부 관료들 사이에서 ‘원더 우먼’으로 유명하다.

이번에 개관한 여성교육문화센터 건설의 산파역을 맡아 각 부처와 외교단을 돌며 문전박대에도 불구하고 기금 조성을 이끌어낸 ‘악바리’로, 또 빈민학교를 찾아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천사의 손’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오 씨가 아프간과 인연을 맺은 것은 동부산대를 거쳐 2000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뒤 미 국무부가 후원하는 해외지원기구 CIPUSA에 들어가면서부터.

이곳에서 아프간 지원 프로그램을 담당하던 오 씨는 2002년 CIPUSA 샌프란시스코 지부장으로 승진한 이듬해에 현장경험을 쌓기 위해 연봉 6만 달러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굿네이버스 카불지부에 무보수 자원봉사자로 합류한다.

“카불에서 3년 가까이 지내다 보니 벌어 놓은 돈을 다 까먹었어요. 사실 지금도 옛 직장에서 연봉을 올려줄 테니 돌아오라고 부르고 있어요. 하지만 돈보다 소중한 것은 꺼져가는 생명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요?”

카불=반병희 기자 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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