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명과 통화한 누구나 ‘도청의 덫’ 걸렸다

  • 입력 2005년 11월 17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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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에서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을 거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까지….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3명의 전현직 대통령을 모두 도청한 정황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대권 후보는 거의 모두 도청=국정원이 당초 노 대통령에 대해 상시 도청을 시작한 것은 노 대통령이 여당인 민주당의 최고위원으로 잠재적인 대선 후보군에 포함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당시 민주당의 주류였던 동교동계와는 다소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2000년 8월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입각하면서 정치적 보폭을 넓혀 갔다. 노 대통령은 같은 해 9월 부산에서 대권 후보 경선에 도전하겠다며 대통령 출마 선언을 했다.

국정원은 이때부터 노 대통령에 대해 집중 감시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인제(李仁濟) 의원이 도청을 당한 것도 유력한 대권 후보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해 완주했던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에 대해 도청이 이뤄진 것도 이런 맥락이다. 도청을 당한 김근태(金槿泰) 보건복지부 장관은 당시 대선 후보 경선에 참가했으나 중도 하차했다.

▽“도청 공화국”=15일 구속된 임동원(林東源) 신건(辛建) 전 원장의 구속영장에는 주요 인사 1800여 명의 휴대전화 번호가 감청 장비에 입력된 것으로 나와 있다.

상시 도청 대상자 1800여 명은 국정원 직원들의 진술을 통해 파악된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이들의 이름을 담은 별도의 명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청수사팀 관계자는 “국정원 감청부서인 제8국(과학보안국) 산하 감청팀원이 각각 몇 명의 휴대전화 번호를 R2 장비에 입력했는지 조사한 뒤 이를 토대로 상시 도청 대상자의 수를 파악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상시 도청 대상자는 1800여 명의 몇 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도청 대상은 1800여 명이었지만 이들 ‘표적’에게 전화를 걸면 대화 상대방까지도 추적이 가능해 사실상 무차별적인 도청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영장에 드러난 도청 명단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추가 도청 사례를 계속 조사 중인 만큼 또 다른 충격적인 도청 실태가 드러날지 모른다는 얘기다.

▽R2는 국정원 도청의 일등공신=R2는 국정원의 도청 능력을 결정적으로 높여 준 첨단 장비였다. 휴대전화를 실시간으로 도청할 수 있는 데다 특정 인사의 통화만 도청할 수도 있었다.

서울 시내 광화문, 구로, 혜화, 신촌, 영등포, 영동전화국 등 6개 전화국에서 유선중계통신망(휴대전화의 무선구간, 유선전화의 실선구간을 제외한 모든 통화구간을 의미하며 불특정 다수의 통화가 흐르는 유선구간)을 국정원에 설치된 R2에 연결하는 방식으로 도청했다.

R2에는 사전에 휴대전화 번호가 입력된 상태에서 전화 통화가 시작되면 R2에 빨간색으로 표시되는 기능이 있다. 따라서 국정원 직원들은 첩보 수집 대상 인사를 집중적으로 도청할 수 있었다.

도청 대상자는 주로 김은성(金銀星·구속기소) 전 국정원 2차장 등이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차장의 지시에 따라 감청 부서인 8국 종합운영과 직원들이 주요 인사의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R2 수집팀이 취합한 통화내용은 종합처리과를 거쳐 대화체로 요약돼 1일 2회에 걸쳐 6∼10건이 국정원장에게 보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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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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