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2006 정부예산안]<上>주먹구구… 생색내기…

  • 입력 2005년 11월 17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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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각 상임위 전문위원들이 국회의원들의 본격적인 예산심사를 위해 발간한 ‘2006년 예산안과 기금운영계획안 검토보고서’는 예산 낭비가 우려되는 사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정부의 요청대로 매년 예산을 줬지만 절반도 못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심지어 예산만 따놓은 채 한 푼도 못 쓰고 다음 해에 또 신청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적지 않았다.

○ 타당성-현실성 따져보지도 않아

그동안 논란거리가 돼 왔던 신문유통원 설립을 위한 예산의 경우 타당성을 결여한 부적절한 편성의 대표적 사례로 꼽혔다.

문화관광부는 여러 신문사의 신문을 공동으로 배달할 신문유통원을 설립하기로 하고 본부 및 지역센터 설립 운영비로 우선 내년에 100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배달망이 약한 신문사들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국회 예결위 검토보고서는 5개 신문사가 1억 원씩 투자했다가 실패한 경기 과천 공배지국의 사례를 들어 “신문의 공동배달을 전국적으로 일시에 도입할 경우 실패할 위험이 높다”면서 “내년 국고지원 규모에 대한 재검토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이달 1일 발족한 신문유통원은 각 신문사의 참여 여부 및 이와 관련한 조건(부수 공개, 사업비 분담 등)이나 지역센터가 설립될 지역 선정 등 기본적인 사업 준비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고 보고서는 밝혔다.

정보통신부는 농어촌에 초고속 통신망을 깔겠다며 내년에 90억 원의 예산을 요청했다. 통신망을 놓는 민간사업자가 전체 사업비의 50%,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25%를 내놓으면 이에 맞춰 정부가 25%를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예결위 검토보고서는 “농어촌지역 주민들이 초고속 통신망을 통해 인터넷을 이용하려면 가구당 인터넷 사용료를 월 3만 원씩 내야 되고, 100만 원 정도 되는 컴퓨터를 사야 되는데 영세한 농어민이 자기 부담으로 인터넷 서비스를 적극 이용할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농림부는 한우 송아지 가격이 기준가격보다 떨어지면 차액을 보전해주기 위해 축산발전기금 57억3600만 원을 요청했다. 한우 농가의 송아지 재생산과 경영 안정을 위해서다.

하지만 이 사업이 전국적으로 실시된 2000년 이후 송아지 가격이 기준가격보다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어 263억3600만 원이 고스란히 쌓여 있다.

○ 법적 근거도 없는데 예산 요청

아직 관련 법률도 마련되지 않았는데 예산부터 먼저 타놓고 보자는 관행도 그대로 계속됐다.

중앙인사위원회는 ‘고위공무원단’을 내년부터 도입하기로 하고 내년 예산안에 12억3900만 원을 책정했다. 계급과 상관없이 적격자를 임용한다는 취지다. 올해도 홍보비 등으로 3억1600만 원의 예산을 편성해 집행했다. 이 제도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려면 국가공무원법부터 먼저 개정해야 하는데 관련법 개정안은 5월 이후 국회에 계류 중이다.

농림부는 축산물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기준원 설립을 위한 예산 20억700만 원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정부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된 뒤인 10월 말 현재까지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지도 않은 상태다. 더구나 입법예고안 부칙에는 시행일이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로 돼 있다.

예결위 검토보고서는 “법률 개정을 전제로 한 예산안 편성”이라면서 “개정안이 통과된다 해도 12개월 기준으로 산출된 인건비 및 운영비 지원액은 감액돼야 한다”고 밝혔다.

성균관대 안종범(安鍾範·경제학) 교수는 “정부가 모든 사업에 대해 사전평가를 하고 있다지만 제대로 성과를 거뒀는지 사후 평가는 거의 안 하고 있다”면서 “그렇지 않아도 내년 재정여건이 상당히 좋지 못한데 필요 없는 사업을 엄격히 가려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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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기자 kkh@donga.com

▼중복 편성 사례▼

외환위기 이후 취업난이 심각해지자 부처마다 너도나도 일자리 창출과 취업 지도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취업 관련 예산은 늘 대표적인 중복 예산으로 꼽혀 왔다.

내년 예산안도 예외는 아니다.

노동부는 ‘청소년 직장체험 프로그램’ 사업에 443억900만 원을 편성했다. 청소년에게 산업현장 연수기회를 줘서 직업 선택과 진로 설계에 도움을 준다는 취지로 참가자 1인당 6개월 한도로 월 30만 원씩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비슷한 사업은 다른 부처에도 있다.

산업자원부는 ‘이공계 미취업자 현장연수사업’ 중소기업청은 ‘대학생 중소기업 현장체험활동’이란 이름으로 각각 100억 원, 24억5000만 원을 내년도 예산에 편성해 두고 있다.

사업 내용도 모두 미취업 청소년에게 산업현장 체험 기회를 주겠다는 것으로 별 차이가 없다.

특히 노동부의 ‘청소년 직장체험 프로그램’ 참가자의 절반 이상은 매년 일반 기업이 아닌 공공기관에서 직장 체험을 해 왔다.

이에 대해 예결위 검토보고서는 “감사원과 국회가 공공기관 위주의 연수실시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해 왔음에도 심층적인 재검토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공공부문 연수 참여자를 줄이고 이에 해당하는 예산을 깎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에 대해서도 참가 대상자를 줄이고 예산도 삭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됐다. 노동부는 자활대상자, 장기구직자 등 취업취약계층에 공익성 높은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올해 예산보다 갑절로 늘어난 517억1300만 원을 책정했다.

하지만 당초 취업취약계층에 일자리를 준다는 취지와 달리 일반 구직자의 참여비율이 △2003년 30.6% △2004년 49.1% △2005년 1∼9월 51.5%로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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