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파워엘리트 2人의 ‘아름다운 도전’

  • 입력 2005년 11월 17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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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잘될 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미국 유학길에 오른 안철수 전 안철수연구소 사장은 최근 실리콘밸리의 한 벤처캐피털 회사에서 벤처 투자실무 경험을 쌓고 있다. 벤처캐피털이 몰려 있는 실리콘밸리의 샌드힐로드에서 부인이 찍은 안 전 사장. 사진 제공 안철수 씨
회사가 잘될 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미국 유학길에 오른 안철수 전 안철수연구소 사장은 최근 실리콘밸리의 한 벤처캐피털 회사에서 벤처 투자실무 경험을 쌓고 있다. 벤처캐피털이 몰려 있는 실리콘밸리의 샌드힐로드에서 부인이 찍은 안 전 사장. 사진 제공 안철수 씨
▼美실리콘밸리서 투자업무 배우는 안철수 씨▼

“돈 냄새 나지 않는 ‘따뜻한 벤처캐피털리스트’가 저의 새로운 목표입니다.”

올해 3월 최고 실적을 올리던 안철수연구소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홀연 물러나 미국 유학길에 오른 안철수(安哲秀·43) 전 사장. 그는 지금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투자전문가로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있었다.

16일 미국 캘리포니아 팰러앨토에서 가족과 생활하고 있는 안 전 사장과 전화 인터뷰를 갖고 요즘 그의 삶과 생각을 들어 보았다. 현직에서 물러난 뒤 가진 첫 언론 인터뷰다.

●“벤처의 성장을 돕고 싶다”

CEO 시절 그의 결심은 “정직한 기업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겠다”는 것이었다. 백신 판매업체를 경영하는 CEO가 때때로 “컴퓨터바이러스 위험이 과장됐다”고 발표할 정도였다.

이런 정직성 때문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금도 그는 각종 조사에서 존경받는 기업인 1, 2위를 다툰다.

그와 함께 벤처기업협회를 이끌던 ‘벤처 1세대’ 기업인들의 분식회계 사건이 최근 잇따라 터지면서 그의 가치는 더욱 빛나 보인다.

안 전 사장은 “한국 벤처가 성공하기 힘든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제대로 된 벤처캐피털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 벤처캐피털은 초기 단계의 벤처에 투자해 회사의 성장을 돕기보다는 어느 정도 검증된 벤처에 투자해 차익을 노리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실리콘밸리의 한 벤처캐피털에서 기술 및 경영 자문에 응해 주고 그 대가로 이들의 투자업무에 참여해 투자 노하우를 배우고 있다.

“돈벌이에 눈이 멀었다는 평가를 받을까 걱정되지만 내가 원하는 건 한국 벤처에 필요한 ‘따뜻한 벤처캐피털리스트’입니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은 기술만 갖고 회사를 시작한 벤처기업인에게 경영전략과 기술 트렌드, 인맥 등을 소개해 성장을 돕는데 이를 한국 벤처에 소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부부가 꿈꾸는 IT·BT 한국

시애틀로 유학을 떠났던 그가 실리콘밸리의 팰러앨토로 이사하게 된 건 최근 워싱턴주립대 법대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 연구원이 된 부인 덕분이다.

의사였던 부인은 2년 전 딸과 함께 먼저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당신도 의사 그만두고 컴퓨터 백신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듯이 나도 이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겠다”는 포부와 함께….

안 전 사장은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생명공학기술(BT)도 외국기업과 지적재산권 및 특허 분쟁을 겪게 될지 모른다”며 “아내는 법과 의사 경력을 접목해 한국의 앞날에 필요한 일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며 말했던 ‘2년 뒤 귀국’이란 다짐을 지키고 싶어 했다. 해외에 있다 보니 위기감이 들더라고 했다.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내가 초고속 인터넷과 최첨단 휴대전화의 나라인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정보기술(IT)의 본고장 실리콘밸리에서조차 ‘IT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더라고요.”

그는 한국이 중국과 일본을 잇는 동북아 허브가 되지 못하고 뉴욕과 워싱턴 사이에 끼여 인재를 두 도시에 빼앗기는 필라델피아처럼 될까 우려했다. “1년 반 뒤에는 꼭 귀국해야지요. 한국 벤처에 작으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요.”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日소프트뱅크 입사한 3선의원 출신 시마 씨▼

재일교포 3세 기업인 손정의(孫正義) 사장이 경영하는 일본 소프트뱅크에 이달 초 이색 사원이 입사했다.

중의원 3선의 경력을 지닌 시마 사토시(嶋聰·47·사진) 사장실장. 제1야당인 민주당 소속으로 9·11 중의원 총선거에서 낙선한 뒤 생소한 분야인 첨단 정보기술(IT) 기업의 간부가 됐다.

관존민비(官尊民卑)와 정치 우위 관행이 여전한 일본에서 전직 국회의원의 기업행은 시마 실장이 처음. 그래서 그의 변신은 일본 정계와 재계 양쪽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엘리트 교육기관으로 유명한 ‘마쓰시타(松下)정경숙’ 출신인 시마 실장은 민주당 예비내각의 총무상과 대표보좌 등 핵심 당직을 맡아 장래가 촉망됐던 정치인. 그는 “흔히 정치는 마약과 같아서 한번 중독되면 포기하기 힘들다고 하는데 나도 몇 년만 더 있으면 중독될 거라는 위기감을 느꼈다”며 “지금 나이가 제2의 인생에 나설 마지막 시기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시마 실장은 “기업행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9년간 국회의 경제 관련 상임위에서 활동하면서 국부(國富)를 창출하는 주역은 정치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점을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엔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 기업이 존재한다는 발상이 지배했지만 앞으로는 개별 기업이 지금까지 그 나라 정부가 해 온 것 이상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IT가 장차 일본을 먹여살릴 산업이라는 점도 고려했습니다.”

그는 초선 의원이던 1990년대 후반 벤처 지원 법안을 입안하고 각종 토론회에 민주당 논객으로 참가하면서 손 사장과 인연을 맺었다. 낙선 인사차 손 사장을 찾은 자리에서 “기업에서 새 영역을 찾고 싶다”고 하자 손 사장도 “일본 사회도 바뀔 때가 됐다”며 흔쾌히 동의했다는 것.

그는 “세대교체 열풍 속에 국회에 진출한 한국의 386들이 앞으로 20, 30년 동안 줄곧 정치만을 하는 건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한국에서도 정치인이 기업으로 옮기는 사례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다만 그 전제는 국회의원이 기업에서 통할 정도의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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