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을사늑약 100주년의 대한민국

  • 입력 2005년 11월 17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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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905년 우리 외교권을 일본에 박탈당한 을사늑약(勒約)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해 주권국가의 뿌리를 잃은 쓰라린 경험은 ‘을씨년(乙巳年)스럽다’는 형용사로 남아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국파(國破)의 날’이라고 불리는 늑약 체결 5년 뒤, 이 나라는 송두리째 일본에 넘어가는 망국(亡國)에 이르고 말았다.

우리는 과연 역사에서 배우고, 미래로 나아갈 비전을 찾아내고 있는가. 현명하게 국익(國益)을 다지는 외교를 하고 있는가. 노무현 정권은 어설픈 자주(自主)를 앞세우면서 국가발전의 한 축이 돼 온 한미동맹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대일(對日)외교에서는 ‘과거사 불(不)언급’과 ‘외교전쟁 선언’ 사이를 넘나들며 한일관계의 불안정성을 증폭시켰다.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도, 어제 열린 한중·미일 정상회담 같은 양자회담도 국익 각축과 조절의 장(場)이나 다름 없다. 오늘날 북핵문제 6자회담 참가국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4국은 100년 전 한반도에서 자국의 국익 실현을 위해 겨루었던 바로 그 열강이다. 냉엄한 국제질서의 역학을 정확히 읽고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않는다면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우선 국제정세를 객관적으로 읽는 능력과 정보 수집능력이 문제다. 늑약 체결 두 달 전에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포츠머스 조약으로 ‘한국에서의 우월권’을 인정받았다. 같은 해 7월 미일 간에 ‘가쓰라-태프트 밀약(密約)’이 맺어져 이 땅에 대한 일본의 주도권이 양해됐다. 일본은 8월의 영일(英日)동맹 개정을 통해서도 조선을 ‘지도 감리 보호’할 배경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열강의 막후 흥정과 공작을 당사자인 한국만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현실을 읽지 못한 당시 대한제국 정부는 한미조약에 따라 미국이 일본의 야욕을 막아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을 지원하는 것이 미국에 이롭다고 봤고, 포츠머스 조약에서도 적극적으로 일본에 훈수를 했다. 무지 무능한 외교가 나라를 망친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은 어떤가. 미일동맹은 ‘사상 최고의 밀착’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상황인 데 반해 한미동맹은 불협화음을 내며 동요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이념 과잉(過剩)과 친북(親北) 편향은 국가 정체성의 위기를 불러왔다. 과도한 친중(親中)은 한미일 공조를 위협한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성장동력의 상실로 나라경제의 미래도 밝지 못하다. 여기에 내부갈등을 확대재생산하는 적대(敵對)의 리더십은 나라를 분열의 늪에 빠뜨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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