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주성] 근원적인 재정개혁 필요한 때

  • 입력 2005년 11월 17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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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예산 국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정부의 적자재정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울 것이다. 올해 추경예산에서 4조 원, 내년도 예산안에서 9조 원 등 총 13조 원 규모의 적자를 메우기 위한 국채 발행 의제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근시안적인 세금 인하로 세수는 모자라는데 지출은 별로 줄지 않으니 정부 재정에 빨간 불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재정적자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우선 세입 측면을 보면 정부는 5%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상정하고 있지만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4%대로 내려왔고 앞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성장률이 떨어지면 세금도 덜 걷힌다. 대대적인 세제개혁이 없다면 세수 기반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또한 국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업은 법인세 인하를 요구할 것이고, 드러누우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정치 풍토에서 소득세율은 현상 유지만 해도 다행이다.

세출 측면을 보면 고령화에 따르는 복지지출 증가, 통일 및 자주국방 관련 비용의 증가 등 구조적 재정 증가 요인이 즐비하다. 이와는 별도로 추락하는 성장잠재력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인적 자본이나 연구개발에 대한 정부 지출의 증가가 필요할 것이다. 금리 인하에 한계가 있으니 재정의 경기 조절 기능에 대한 요청 또한 높아질 것이다. 나아가 종래 규제를 통해 행하던 정부 업무의 상당 부분이 예산안으로 들어오면서 새로운 재정 수요가 생겨날 것이다.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재정을 손봐야 한다. 세금과 정부 지출은 경제논리 못지않게 정치적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남미 국가들이 이론을 몰라서 재정적자의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니다. 정부를 신뢰하지 않은 국민은 세금 내기를 꺼렸고 기득권을 꿰찬 집단들은 양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선택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진실 앞에서 솔직해져야 한다. 지출 증가요인 중 불가항력적인 부분은 인정하고 넘어가자. 남는 선택은 세금을 더 거두거나 다른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조세부담률이 20%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27%에 크게 못 미친다. 이를 근거로 우리도 세금을 올릴 여력이 있다고 믿으면 착각이다. 서유럽 국가들이 우리 수준인 1960, 70년대는 복지국가 혹은 ‘큰 정부’에 대한 열정이 뜨거울 때였고, 지금처럼 외자 유치를 위한 조세 인하 경쟁도 드물었다. 또한 우리나라처럼 세 부담의 형평성이 엉망이고 정치인의 생명과 시계(視界)가 짧은 경우에는 세금 인상보다는 인하가 사회 갈등을 막는 수단으로 채택되기 쉽다. 당장 부가가치세율을 올리면 쉽게 세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현실을 모르는 착각에 불과하다. 몇 년이 걸려도 좋으니 근로나 투자유인을 살리며, 세수도 올리고, 집단 간 갈등도 줄일 수 있는 세제개혁이 필요하다. 알량한 세율 조정이 아니라 조세 구조를 확 바꿔야 한다.

정부 지출의 개혁도 마찬가지다. 여야 모두 별로 할 말이 없다 보니 “낭비와 비효율을 줄이자”는 말만 되풀이하는데 이렇게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민간이 잘할 수 있는 부분은 연금이건 사회간접자본이건 가급적 민영화하고, 대신 정부는 인적 자본과 기술 혁신 등 성장잠재력에 도움을 주지만 시장에서 조달되기 힘든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기업이나 기득권 계층보다는 저소득층 자녀, 여성, 청년, 중소기업 등 당장 힘은 없지만 우리 경제의 미래를 짊어질 주체들을 돌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분배라 배척하는 사람은 성장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지식과 기술과 속도로 경쟁하는 사회에서는 몇 십 개 계열사를 총수 한 명이 호령하는 기업 체제는 성공하기 힘들다. 언제든지 해외로 나가 골프 치고 명품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의 지갑만 쳐다보며 경기 회복을 기원하는 것도 무모한 짓이다.

한때 경제를 주도하던 정부가 요즘은 시장에 끌려 다니며 경제주체의 발목이나 잡는다는 얘기를 듣는다. 할 일은 더 많아졌는데 수단은 예전만 못하니 그만큼 정부도 힘든 것이다. 그렇다면 한번 털고 일어나야 한다. 위원회 몇 개, 장차관 몇 자리 가지고 아옹다옹하지 말고 왜 재정이 망가지면 나라가 망하는지 남미의 경험을 음미해 봐야 한다.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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