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DJ ‘임동원-신건씨 영장’ 반발]이중 플레이?

  • 입력 2005년 11월 1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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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남북공동선언 5주년을 기념해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주최로 6월 13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 개막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오른쪽)이 기조연설을 하는 모습을 노무현 대통령이 지켜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6·15남북공동선언 5주년을 기념해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주최로 6월 13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 개막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오른쪽)이 기조연설을 하는 모습을 노무현 대통령이 지켜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5일 임동원(林東源), 신건(辛建) 전 국가정보원장이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도청에 적극 개입한 혐의로 구속되기에 앞서 이들에 대한 검찰의 사전 구속영장이 14일 청구됐을 때 청와대는 불만을 나타냈고, DJ 측도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의 이면엔 호남지역의 여론 악화를 우려한 청와대의 생색내기와 도청 수사가 DJ에게까지 확대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동교동 측의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동교동, 격앙된 반응으로 불똥 차단 나선듯▼

임동원, 신건 두 전직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를 보면 국정원의 도청이 주요 인사 1800여 명에 대해 행해졌고 또 사실상 김대중 정부 시절 내내 이뤄졌음이 드러났다.

따라서 DJ로서는 재임 중 도청이 없었다거나 도청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기가 더 곤란해진 상황이다. 더구나 두 사람은 김대중 정부 당시 대통령과 수시로 교감을 했던 핵심 측근 실세 아닌가.

하지만 DJ 측은 14일 검찰의 사전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어떻게 이런 무도한 일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심지어 사전 구속영장 청구를 취소하라는 요구까지 했다.

DJ 측이 일반의 상식에 배치되는,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인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도청 수사의 불똥이 DJ에게까지 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수사에서 DJ가 반인권적 범죄인 도청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했거나 방조했다는 게 드러날 경우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인권 대통령’이라는 ‘치적’이 한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로선 DJ가 도청을 지시했거나 묵인했다고 볼 직접적 증거가 드러난 것은 없다. DJ는 취임 초 국정원을 방문해 당시 이종찬(李鍾贊) 원장에게 도청 근절을 지시했다.

그러나 DJ 재임 중 엄익준(嚴翼駿·사망) 김은성(金銀星) 전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 등을 중심으로 정계 재계 언론계 인사 등에 대한 도청이 광범위하게 이뤄졌고, 도청을 통해 수집된 정보는 적어도 ‘정제된 형태’로 청와대에 보고됐다.

또 이번 검찰 조사에서 국정원은 DJ의 3남 홍걸 씨의 휴대전화까지 도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2000년 당시 최규선(崔圭善) 씨가 홍걸 씨와 가깝게 지내며 각종 이권에 개입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이들의 휴대전화를 도청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최고 통치권자가 도청 사실을, 그것도 가족과 관련된 사항까지 몰랐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것이 구여권 관계자들의 일반론이다.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DJ도 임기 중반 이후 국정원이 혹시 도청을 하는 게 아닐까 의심한 것 같다. 그러면서도 DJ는 국정원장이 청와대에 보고하러 들어갔을 때 단 한번도 도청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결국 두 전직 국정원장의 형사처벌에 대한 DJ 측의 격앙된 반응은 진짜 무죄를 확신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인권 수호자’라는 명분을 의식한 ‘이중 플레이’일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靑, 영장청구 당일에도 별 얘기 없다가 돌연 檢때리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4일 저녁 열린우리당 임시지도부와의 청와대 만찬에서 “일시적인 유불리로만 따질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선과 정책에 충실하면서 멀리 보고 나가야 한다”며 열린우리당의 창당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자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 열린우리당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민주당과의 통합론에 제동을 건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면서도 노 대통령은 정작 이날 정치권의 주 이슈이던 임, 신 두 전직 국정원장에 대한 검찰의 사전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을 하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 측이 “이 정부가 무도한 일을 한다. 이해할 수 없다”고 심하게 불만을 나타낸 것과 비교해 볼 때 노 대통령의 이 같은 태도는 검찰의 영장 청구를 사실상 ‘용인’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는다.

하지만 청와대는 하루 뒤인 15일 비서실 참모들의 의견 형식으로 검찰의 사전 구속영장 청구는 지나친 처사였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비록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토를 달았고 또 불법 감청에 대해서는 계속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공개적으로 비판한 데는 뭔가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과거의 예로 볼 때 청와대는 사전에 영장 청구 사실을 알았을 수 있고 또 그에 대해 의견 표명을 하려 했다면 14일까지 기회가 있었는데 뒤늦게 공개적으로 의견을 표명한 것을 보면 시류(時流)에 따라 눈치를 본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검찰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최근 악화된 호남지역 민심을 의식한 조치라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민주당과의 통합 논의에 분명히 선을 그을 필요는 있지만 두 전직 국정원장에 대한 영장 청구에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가뜩이나 여권에 비우호적인 호남 정서를 자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점에서 청와대의 태도는 이중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DJ가 8일 동교동을 찾은 열린우리당 정세균(丁世均) 의장 등에게 “여러분은 나의 정치적 계승자”라고 덕담을 한 뒤 통합론이 급속히 공론화되는 분위기였다. 청와대는 양당 통합론이 ‘지역주의 정당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며 못마땅해 하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청와대가 뒤늦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검찰을 비판한 것은 결국 민주당과 DJ를 견제하면서도 호남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온 고육책이라는 분석이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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