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존폐▼
대법관들은 대부분 ‘국보법 폐지’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지만 상당수가 현행 국보법에 대한 ‘손질’의 필요성을 밝혔다.
특히 지난해 8월 이후 임명된 대법관들은 대체로 이전 대법관에 비해 한층 더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검찰 출신의 강신욱(姜信旭) 대법관은 2000년 임명 당시 “과연 국보법을 개정할 시점인지 좀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규홍(李揆弘·2000년 임명) 대법관도 신중한 입장이었다. 2003년 임명된 고현철(高鉉哲) 김용담(金龍潭) 대법관 역시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현 단계에서 폐지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이전 임명된 대법관 중에선 이강국(李康國) 박재윤(朴在允) 대법관이 임명 당시 찬양고무죄(7조) 불고지죄(10조) 등 일부 개정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용훈(李容勳) 대법원장은 올해 9월 국회의 인사청문회에서 “오남용의 여지를 없애되 헌법질서 수호에 필요한 부분은 존치돼야 한다”고 말했다.
비교적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김황식(金滉植) 대법관 후보자도 “국가 헌법질서 수호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는 필요하다”면서도 “오남용 여지가 있는 조항은 과감하게 삭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영란 대법관과 박시환(朴時煥) 김지형(金知衡) 후보자도 비슷한 견해였다.
▼사형제도는…▼
이번 분석 결과 사형제에 대해 대법관(후보자 3명 포함) 13명 중 8명이 ‘폐지’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하급심에서 사형을 규정한 형법 조항의 위헌 여부를 헌법재판소에서 가려 달라는 위헌심판 제청이 들어올 경우 대법원이 위헌 견해를 내놓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법원은 당분간 지난해 여야 의원 175명이 제출한 사형제 폐지 법안의 처리 상황을 주시하며 사형선고를 최소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법원장을 비롯해 손지열(孫智烈) 김영란 양승태(梁承泰) 대법관과 김황식 박시환 김지형 대법관 후보자는 사형제 폐지 입장을 밝혔다.
강신욱 박재윤 고현철 김용담 대법관은 “아직 폐지하긴 이르다” “반인륜적 범죄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 사형이 불가피하다”며 신중한 견해를 보였다.
대법원은 1994년 12월 사형을 규정한 형법 조항의 위헌 심판제청 사건에서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헌법재판소도 1996년 11월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헌재는 당시 “시대 상황이 바뀌어 사형이 가진 범죄예방의 필요성이 거의 없게 되면 곧바로 폐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2000년 이후 대법원이 사형을 확정한 경우는 2000년 9명, 2001년 8명, 2002년 2명, 2003년 5명, 2004년 2명이었다. 올해는 6월에 사형이 확정된 연쇄살인범 유영철 씨 1명뿐이다. 1, 2심에서의 사형선고 사례도 매년 줄고 있다. 유 씨를 포함해 현재 사형이 확정돼 대기 중인 기결수는 60명이지만 1997년 12월 이후 사형이 집행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
▼양심적 병역거부▼
지난해 7월 대법원 전원재판부는 종교적 이유로 입영을 기피한 혐의(병역법 위반)로 기소된 최모(23) 씨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에 사법부가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 법원 안팎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보다 전향적인 판결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대법원장을 비롯해 김영란 양승태 대법관 및 3명의 대법관 후보자는 모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강국 대법관은 지난해 판결 당시 “양심의 결정에 대해 형벌을 가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유일하게 처벌 반대 의사를 고수했던 인물이다. 반면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은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한 헌법상 정당한 제한”이라고 주장해 온 배기원 대법관은 이달 말 정년퇴임해 법복을 벗는다.
현행법상 곧바로 무죄 선고로 연결되기는 어렵더라도 판결문의 ‘참고 의견’ 등을 통한 대체복무 입법 요구도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하급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처벌을 거부하는 판결이 잇따를 가능성도 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