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도청 국가범죄’ 정치게임으로 물타기 안 된다

  • 입력 2005년 11월 1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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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에서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임동원 씨와 신건 씨에 대해 법원이 어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두 사람은 영장실질심사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이 도청에 주도적으로 개입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데다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 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검찰이 국정원의 도청 행위를 중대 범죄로 규정하고, 당시의 국정원장들에게 최종 책임을 물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당연한 사법절차다. 그런데도 DJ 측과 현 정권이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구속 불가’를 합창한 것은 사법부와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훼손한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국정원이 장기간 조직적 계획적으로 도청을 자행했음은 그동안의 검찰 수사로 명백하게 드러났다.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의 전형적인 사건이다. 그런데 ‘인권 대통령’이라고 자처했던 DJ 측은 사죄는커녕 영장 청구를 “무도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며 영장 청구 취소를 요구했다. 이런 것이 적반하장(賊反荷杖)이 아니고 무엇인가.

청와대 측은 어제 참모회의에서 “불구속 수사 원칙에 비추어 구속영장 청구는 지나쳤다”고 법원을 압박했다. 열린우리당 배기선 사무총장은 한술 더 떠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 제2의 김치파동이다”고 말했다. 국가권력의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배제해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현 정권이 집단 건망증에 빠진 것이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은 석 달 전 8·15 경축사에서 “국가권력 남용 범죄에 관해서는 시효 적용을 배제하는 법률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열린우리당은 7월 국회에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공소시효에 관한 특례법안’을 제출했다.

적대세력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공소시효까지 배제해야 하고 현실정치를 위해서는 ‘불구속 수사 원칙’을 지켜야 하는가. “잘못된 과거를 규명하고 정리해야 이 나라에 미래가 있다”며 30년 전, 50년 전, 더 나아가 일제강점기 친일문제까지 들춰낼 때는 언제이고 바로 발밑의 국가범죄 규명에 대해서는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고 강변하는가.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法治)를 흔들어도 되는가. 그것이 국익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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