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533년 피사로, 잉카제국 정복

  • 입력 2005년 11월 1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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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500배나 더 많은 적과 싸워 단 한 명도 죽지 않고 대승(大勝)한 기묘한 전투였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스페인의 약탈자 프란시스코 피사로. 1533년 그가 잉카제국에 쳐들어갔을 때 그의 군대는 160명에 지나지 않았다. 인구 800만 명을 헤아리던 잉카제국에는 8만의 정예군이 버티고 있었으니, 그건 분명 불가사의였다.

어려서는 돼지치기였고 나이가 들어서는 용병으로 잔뼈가 굵은 피사로.

그는 잉카의 왕 아타우알파를 사로잡아 몸값으로 방 한 개를 가득 채우는 금을 빼앗았다. 가로 6.7m, 세로 5.2m 되는 방에 사람 키의 1.5배 높이만큼 황금이 쌓였다. 그는 수도 쿠스코로 진격해 금이 아닌 모든 것을 파괴했다.

후세에 ‘악의 대명사’가 된 피사로. 그는 미천한 태생이었다. 사생아였다. 무학에 문맹이었다.

일찍이 황금이 넘치는 땅, 잉카의 얘기를 듣고 군침을 흘렸다. 그러나 파나마 총독이 그의 원정 계획에 반대하자 칼로 땅에 선을 긋고 부하들을 다그쳤다. “부와 명예를 원하는 사람은 넘어오라!” 그 선을 넘은 게 원정의 선봉에 섰던 ‘유명한 13인’이다.

500년의 전설 속에 묻혀있던 잉카문명을 20세기에 부활시킨 것은 미국 고고학자 하이럼 빙엄이었다.

1911년 그가 이끄는 탐험대는 안데스의 밀림을 뒤져 해발 4570m의 고원에 세워진 잉카의 성소, 마추픽추를 발견한다. 유적은 세계 고고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고 페루 지식인들 사이에 ‘네오 잉카’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잉카는 ‘태양의 제국’이었다.

11세기 말 페루와 콜롬비아, 칠레에 이르는 광활한 제국을 이루었다. 당시 잉카제국은 정복자인 스페인보다 더 문화적이고 도덕적이며 정치적으로 자유로웠다고 전한다.

그 잉카제국은 이교도들의 지배 아래 철저하게 유린된다. 그들은 잉카의 신전과 궁전을 허물고 그 위에 교회와 수도원을 세웠다. 인디오들에게 가톨릭으로 개종할 것을 요구하고 거부하면 불에 태워 죽였다.

잉카 최후의 황제 아타우알파는 화형을 면하기 위해 죽기 직전 세례를 받아야 했고 교수형에 처해진다.

이렇게 해서 태양을 섬기며, 태양의 아들 ‘비라코차’를 기다리던 잉카인들은 역사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남아 있는 것은 말 없는 잉카의 돌뿐!

‘문명의 진보는 태양을 잊어 가는 과정’이라고 했던가. 잉카문명은 그렇게 졌다….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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