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신임외상에게 듣는다]“야스쿠니 참배 종교문제로 인식”

  • 입력 2005년 11월 1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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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 다로 신임 일본 외상은 취임 후 국내외 언론 중 처음으로 본보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자신이 ‘한국에서 별로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임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아소 다로 신임 일본 외상은 취임 후 국내외 언론 중 처음으로 본보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자신이 ‘한국에서 별로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임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외상 취임 후 처음으로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과 통화를 하면서 ‘한국에서 별로 평판이 좋지 않은 아소 다로라는 사람이 인사드린다’고 했어요.” 아소 다로(麻生太郞·65) 일본 외상은 11일 오후 6시 40분 외상 접견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면서 생각 밖으로 반 장관과의 통화 내용부터 소개했다. 집권 자민당의 정조회장이던 2003년 5월 ‘창씨개명(創氏改名)은 당시 조선인이 원해서 한 것’이라는 발언으로 한국 내에서 자신의 이미지가 좋지 않다는 점을 의식하는 듯 인터뷰 도중 이따금 겸연쩍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는 “고향인 규슈(九州)의 후쿠오카(福岡)가 한국과 가까워 한류 열풍의 위력을 누구보다 실감하고 있다”며 이정무(李廷武) 전 건설교통부 장관을 비롯한 한국 지인들의 근황을 묻기도 했다. 한국에 대한 친근감을 애써 강조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소 외상이 10월 31일 외상에 취임한 뒤 언론과 단독 인터뷰를 가진 것은 일본 국내외를 통틀어 본보가 처음이라는 게 외무성 측의 설명.

지바 아키라(千葉明) 외무성 국제보도관은 “한국과의 관계를 하루빨리 개선하기를 바라는 일본 정부의 판단이 반영된 것”이라며 “동아일보가 한국 여론을 주도하는 유력지라는 점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한일 관계는 민간교류 분야에서는 전례 없이 활발하지만 정치 쪽으로 눈을 돌리면 긴장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 여러 다른 견해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민간 분야를 포함해 전체를 놓고 보면 아주 좋은 상태라고 진단하고 싶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와 ‘용사마 붐’ 등에 따라 양국 간 인적 교류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요즘 일본의 웬만한 호텔과 열차 역에는 영어와 중국어, 한국어 안내판이 나란히 붙어 있다. 언론에서 정치 얘기를 크게 취급하는 경향 때문에 국민의 실제 생활에서 이뤄지는 활발한 교류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과거 정치 외교적으로 관계가 원만했던 시기가 있었지만 그때는 민간분야의 교류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조했다”며 “요즘 한일 관계는 정치만 빼고는 다 좋다”고 거듭 강조했다.

엉뚱하게도 아소 외상의 취미 중 하나는 만화 보기. 그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수준이 높았는데 요즘은 한국 만화작가의 작품 중 뛰어난 것이 많아 나도 재미있게 본다”고 소개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대해 한국,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갈 생각인가.

“고이즈미 총리가 여러 차례 말했듯이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A급 전범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게 일본 정부를 대표해 경의를 표한 것이다. 국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이즈미 총리의 지역구가 현재 미군 기지가 있는 도쿄(東京) 인근 요코스카(橫須賀)인데 이 지역 주민들이 과거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많이 희생된 것도 총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8월 15일에 참배를 하면 과거 전쟁에 관한 이야기로 번질 수 있겠지만…. 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일본의 내정문제라기보다는 종교적 전통에 관한 문제로 받아들인다. 어쨌든 이 문제는 한국, 중국의 정부와 국민에게 성의를 갖고 취지를 설명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아소 외상은 ‘모두가 야스쿠니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회원으로 야스쿠니신사에서 주요 행사가 열릴 때마다 참배해 왔지만 외상이 된 뒤에는 “적절히 판단하겠다”며 재임 중 참석하지 않을 뜻을 내비쳤다. 일본 외교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자신은 행동을 조심하겠지만 본질적으로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한 생각 자체가 바뀐 것으로 보는 건 무리라는 게 외무성 주변의 해석이다.

―한국, 중국과의 외교 마찰이 이어지고 있는데 두 나라에 대한 인상은….

“한국은 일본의 인접국 중에서도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라는 가치관을 공유한 나라다. 민주적인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를 경험했고 경제발전을 거치면서 국민의 생활 수준도 놀라울 만큼 향상됐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지역 안정과 공동 번영을 위해 일본과 힘을 합쳐야 할 파트너라고 본다.”

그는 중국과의 관계는 언급하지 않은 채 한국만을 ‘같은 가치관을 공유한 이웃’이라고 치켜세웠다. 그가 중국 정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리덩후이(李登輝) 전 대만 총통의 일본 입국을 주선하는 등 ‘친(親)대만’ 성향 인물이라는 점에서 한국, 중국과의 차별화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90일 이내의 한국인 단기체류자에 대한 비자 면제 연장과 관련해 “비자 면제 기간 중 좋은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이 기간에 살인 사건 같은 것이 일어나면 여론이 악화돼 정부가 조치를 취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사소한 사건으로 ‘큰일’(비자 영구 면제)에 차질을 빚는 사태는 피하고 싶다고 했다. 또 “개인적으로는 연간 400만 명 선인 양국 인적 교류를 500만 명 이상으로 늘리고 싶다”는 희망도 피력했다.

‘창씨개명’ 발언에 대해 묻자 그는 “1996년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당시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창씨개명 강요로 많은 한국 국민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을 사죄한다’고 밝혔는데 내 생각도 이런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과 똑같다”며 말을 흐렸다.

대북 정책에 대해서는 “한반도 정세 안정은 역사적으로 일본에도 매우 중요하며 현재 한반도가 위기 상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력한다는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도쿄의 외교 소식통은 ‘포스트 고이즈미’ 후보 중 한 명인 아소 외상으로서는 14일 부산에서 열리는 한일 외무장관 회담이 외교 수완을 평가받는 첫 시험대라는 점에서 상당한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전했다. 18일로 예정된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경색된 양국 관계의 돌파구를 여는 게 그의 첫 임무라는 것이다.

아소 외상은 부친이 일제강점기 때 규슈(九州)에서 1만여 명의 조선인 징용자를 끌고 가 강제 노역시킨 아소탄광을 경영했고 본인도 한때 사장을 맡았다는 점에서 한국과는 뿌리 깊은 ‘악연’을 갖고 있다. 2년 전의 ‘창씨개명’ 발언 외에도 돌출 발언을 자주해 언론에 단골로 등장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우익 이념을 체계적으로 체화시켰다기보다는 생각나는 것을 자유분방하게 말하는 스타일”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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