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도 죽어서도 소년은 혼자였다

  • 입력 2005년 11월 1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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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 말고는 관심을 갖는 사람이 하나도 없네요.”

13일 집에서 키우던 사냥개(도베르만)에 물려 숨진 권모(9·경기 의왕시 D초등학교 3학년) 군의 시신이 안치된 경기 M병원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권 군은 빈소조차 없이 자신을 숨지게 한 사냥개와 함께 지하 영안실에 안치돼 있다. ▶본보12일자 10면 참조

병원 관계자는 “외조부모가 손자인지만 확인하기 위해 다녀갔고 권 군의 담임선생님과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의원이 빈소가 마련된 줄 알고 잠시 들렀다가 발길을 돌렸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기 과천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권 군의 생모(生母)를 참고인으로 조사했지만 이미 개가(改嫁)한 지 오래됐고 외조부모들도 생계가 어려워 빈소를 돌볼 사람이 없는 실정”이라며 “권 군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참 딱한 처지”라고 말했다.

13일 본보가 단독 입수한 권 군의 일기장에는 ‘외로웠던’ 일상과 고민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숨진 뒤에도 외로운 권모 군이 쓴 일기장의 한 부분. 샌들을 빠는 등 혼자 일을 처리하며 지내온 일상사가 서투른 글씨로 적혀 있다.

“오늘은 신발이 더어서(더러워서) 빨았습니다. …말라서 집으로 가저 와습니다(가져왔습니다).”

최근 일기장에는 몇 차례에 걸쳐 자신이 직접 빨랫비누로 운동화나 샌들을 빨고 말려 걷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래 아이들의 일기장에서처럼 ‘놀이동산’ ‘게임기’ ‘학원’ 등의 단어를 찾기란 힘들었다. 충남 당진군에 가서 농사를 짓는 외조부모는 하루 이틀씩 집을 비워야 했기 때문에 어지간한 일은 권 군 스스로 처리하도록 한 것 같았다.

책의 내용을 옮겨 적는 한글쓰기 연습 공책에는 띄어쓰기가 하나도 되지 않은 문장이 공책을 메우고 있었다.

학교에서 내 준 숙제를 하는 자유 작문 공책에는 “요즈음에는 햄을 더 좋아하는…” “김치가 없으면 밥맛이 나지 않는다”는 등의 글이 있는가 하면 “앞일을 생각해야 한다”와 같은 어른스러운 내용도 들어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한편 의왕시는 권 군이 혼자 지낸다는 주민의 신고를 받고 권 군을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도록 조치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의왕시 측은 13일 “청계동사무소 사회복지사가 4일 오후 4시경 권 군 집을 찾았고 이후 4, 5차례 연락했지만 권 군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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