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31년 철학자 헤겔 사망

  • 입력 2005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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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철학사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남긴 사상가이면서 동시에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자.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서 환영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던 사람.

1831년 11월 14일 숨진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처럼 보는 이가 처한 이데올로기 입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 철학자도 드물 것이다.

그가 정립한 변증법은 혁명의 시기에 계급투쟁의 논리를 뒷받침할 모델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사회주의 붕괴 이후 21세기 미국의 ‘뉴 헤겔리안’ 철학자들은 헤겔 철학을 분리보다 통합, 상호 인정을 강조하는 상생의 모델로 바라보고 있다.

1770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난 헤겔은 어릴 적부터 문학과 철학에 푹 빠져 살았다. 튀빙겐대를 졸업하고 중년이 될 때까지 헤겔은 가정교사 강사 기자 고등학교 교장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헤겔은 ‘이 세상의 위대한 일 중 열정 없이 수행된 것이 없다’는 말을 남겼지만 그 자신은 ‘열정’이 연상시키는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평생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중상류 계층의 경직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체면과 규칙을 중시했으며 유머감각, 임기응변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었다고 전해진다.

48세 때 베를린대 교수가 되어 논리학 역사철학 등을 강의하면서 유명해졌고 59세 때 베를린대 총장이 되면서 생의 정점에 도달했다.

젊은 시절 프랑스대혁명 정신을 환호했던 헤겔의 변증법은 그 자체로도 혁명적이다. 칸트의 이분법에 맞서 헤겔은 모순을 모든 변화의 핵심적 원동력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역사를 절대정신이 스스로를 실현해가는 과정이라고 여겼던 헤겔은 자신의 철학이 절대정신의 실현을 증언하는 지식이기를 바란 듯, 역사를 관념 안에서 스스로 완성시켜 버리는 함정에 빠져 들었다.

프랑스혁명 이후 집권한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침략 전쟁을 벌이자 베토벤은 혐오감을 느낀 나머지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던 교향곡 3번(영웅)의 헌사를 담은 표지를 찢어 버린다.

반면 헤겔은 나폴레옹에게 다음과 같은 찬사를 바침으로써 끊임없는 변화를 주장하는 변증법을 스스로 배반하고 말았다.

‘나는 말을 탄 절대정신을 보았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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