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안락의자에 앉아볼까

  • 입력 2005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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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숨통을 틔워 주는 양재천 주변의 양재천 길이 인테리어 거리로 바뀌고 있다.

유럽 고가구와 인테리어 전문점, 카페들이 들어서면서 화려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양재천 길은 양재천을 따라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서 대치동에 걸쳐 있는 2.8km의 보조간선도로. 하늘을 찌를 듯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830여 그루가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내 산책과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 있는 곳이다.

이 중 대치동 선경아파트에서 타워팰리스를 지나 대치중학교에 이르는 양재천 길은 아파트 경계선과 맞물려 따뜻한 차 한 잔 마실 곳도, 아기자기한 볼거리도 없어 벤치 외에는 머물러 있을 만한 곳을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대치중학교를 지나 양재동 시민의 숲 방향 저층주거단지에 올해 들어 고가구 전문점과 카페들이 들어서면서 자연도 즐기고 쇼핑도 할 수 있는 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이 거리의 원조 가게는 고가구 전문점인 ‘나리 홈’. 2003년 이병숙 사장이 이곳에 둥지를 튼 후 현재까지 9개의 가게가 문을 열었고 입소문이 나면서 마니아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 사장은 “서울시내에서 가게에 앉아 사계절을 감상하고 느낄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며 거리가 너무 아름다워 이곳에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대형 건물이 없어 임대료가 비교적 저렴한 데다 인근에 고급 아파트들이 잇달아 들어서 수요가 늘어난 것도 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7월 문을 연 ‘파보’의 백순림 사장은 도곡동에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 주민을 겨냥해 경기 안양시 평촌에 있던 가게를 이곳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고가구는 대부분 유럽에서 수입한 것으로 제작한 지 100년 이상 된 것들이다. 최근에는 80년 넘는 것들도 고가구에 넣기도 한다지만 정확한 정의는 없는 듯. 현지 경매나 소장자들로부터 직접 구입하거나 농장 등을 방문해 구해 온다는 설명이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사용했다는 1인용 안락의자, 귀족여성들이 쓰던 화장대나 간이책상, 3인용 소파와 비슷하지만 낮 동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만든 데이베드, 영국 왕족이 사용했다는 식기에 이르기까지 재미있는 제품이 많다.

물론 가격은 수십만 원대 탁상용 스탠드부터 수천만 원에 이르는 그림, 가구까지 비싼 편.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가격대로 주로 40, 50대의 여유 있는 계층들이 주 고객이다.

남이 쓰던 것은 싫다며 새로운 것을 찾는 이들을 위해 고가구를 그대로 재현한 리프로덕션이나 고가구 느낌이 나도록 만든 러스틱 가구 등도 이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산책을 나왔다 이런 곳을 알게 됐다는 서모(48·서울 서초구 양재동) 씨는 꼭 사고 싶었던 물건이 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 망설이고 있다며 발길을 쉽게 돌리질 못했다.

소더비 임영란 실장은 “마니아들도 한두 번 방문으로 구입하지는 않는다.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눈여겨봐 뒀다 때가 되면 구입한다”며 “부담 갖지 말고 구경하라”고 당부했다.

안락의자 중 유난히 크고 다리가 짧은 것이 있었는데 이는 당시 귀족여성들이 페티코트 등 풍성한 옷을 입고 앉을 때를 고려해 만든 것이라는 게 ‘프린세스’ 조진옥 사장의 설명.

이처럼 고가구를 통해 당시 문화나 풍습을 엿볼 수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 가을 정취를 만끽하며 눈요기와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기다리는 양재천 길 나들이는 어떨까.

글=강선임 사외기자 sunnyksi@yahoo.co.kr

사진=권주훈 기자 kj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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