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서울 도심 일요일의 두 풍경

  • 입력 2005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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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인 어제 서울 도심에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장면이 있었다. 종로에서는 민주노총이 넓은 차도(車道)를 차지하고 창립 10주년 기념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민주노총의 고성능 스피커 소리가 들리는 바로 옆 청계천에는 휴일 나들이 행렬이 이어졌다.

민주노총 집회는 참석자 1만8000여 명(경찰 추산)을 전투경찰 82개 중대 7000여 명이 에워싼 ‘물 반 고기 반’의 집회였다. 현장에 뿌려진 유인물 가운데는 ‘이라크 침략 반대, 파견군 즉시 철수’ ‘군사기지 철폐’ 같은 구호가 들어 있었다. 근로자의 생존권이 이라크전쟁이나 주한미군 기지 철수와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유인물에는 나와 있지 않았다.

남녀 노동자 10명이 연단에서 선보인 군무(群舞)가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노동과 평등의 세상으로’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노래에 맞추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춤을 추다가 나중에는 쇠파이프 대신 붉은 깃발을 들었다.

1995년 창립된 민주노총은 대기업 노조의 취직 장사와 집행부 간부들의 금품수수 비리가 불거져 이수호 위원장이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날 집회에서 자성이나 내부 개혁을 다짐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정권과 자본의 탄압을 분쇄하자”고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정권과 자본이 내부 비리를 조장한 것은 아니다. 휴일의 평온을 깨뜨리고 도심 교통을 방해하며 쇠파이프와 붉은 깃발을 휘두른 것은 자숙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연사들이 투쟁 의지를 북돋우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주변에서는 길이 막혀 짜증내고 개탄하는 시민들의 표정이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민심과 점점 멀어져 가는 민주노총의 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쌀쌀한 날씨에도 청계천에는 25만 인파가 몰렸다. 거기엔 환경과 평화의 물길이 흘렀다. 질서가 흐트러지지 않았고 휴지가 나뒹굴지도 않았다. 종로에서 들려 오는 외침에 동요하는 시민도 없었다. 사회를 지키는 성숙된 시민의식, 사회 평화, 가족의 소중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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