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호남고속철에 대해 갑자기 말 바꾼 정부

  • 입력 2005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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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11일 “전남 도민의 숙원사업인 호남고속철도 건설은 인구나 경제성과 같은 기존의 잣대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며 조기 착공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해찬 국무총리도 “공사를 앞당길 필요가 있다”고 거들었다. 이들의 발언은 열린우리당이 민주당과의 통합론을 다시 제기하는 등 호남에 대한 구애(求愛)를 본격화한 시점에 나왔다. 현지의 한 언론이 ‘등 돌린 호남 민심 달래기’라고 지적했듯이 내년 지방선거와 차기 대선을 의식한 정치적 카드라는 의심을 살 만하다.

현 정부는 그동안 호남고속철 조기 착공에 부정적이었다. 이 총리는 1월 경부고속철의 막대한 적자를 거론하며 “경제성을 기준으로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겠다”고 말해 호남의 반발을 샀다. 그는 또 2월 국회에서 “호남고속철을 조기 완공하려면 예정보다 더 많은 예산이 들어간다”며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단순 논리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던 정부가 갑자기 경제성 논리를 스스로 부정하고, 재원 조달에 대한 설명도 없이 정책 방향을 뒤집으니 호남 민심인들 미더워할지 의문이다.

호남고속철은 1987년 대선 당시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처음 제안했지만 18년째 표류 중이다. 선거 때마다 호남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이 사업을 거론했으나 타당성 및 재원 조달 문제에 걸려 뒤로 밀렸다. 세수(稅收) 부족에 허덕이는 정부가 호남고속철 사업을 앞당기려면 다른 예산을 깎을 수밖에 없다. 이 총리도 “15조 원가량인 이 사업비를 배정하면 호남의 다른 사업에 들어갈 예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2월 국회에서 말했다.

우선순위나 효율성을 무시한 채 정치적 판단을 앞세워 강행한 ‘밑 빠진’ 대형 국책사업들이 국민의 주머니를 수년째 털어가고 있다. 호남고속철이 또 하나의 사례로 추가돼선 안 된다. 추진 계획과 예상 효과, 재원 조달 계획을 명확히 밝히고 투명하게 논의해 결정해야 한다. 연말에 나올 이 사업 기본 계획 용역 결과도 보지 않은 채 노 대통령 임기 중에 착공식을 할 것처럼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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