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12>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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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조나라 승상의 직분을 가지고 제나라로 쳐들어간 한신이 그 도성인 임치(臨淄)에 이른 것은 한 4년 동짓달이었다. 그때 임치를 지키고 있는 것은 제왕(齊王) 전광(田廣)이 고밀로 달아나면서 임시 재상으로 세운 전광(田光)이란 장수였다. 전광은 5000 군사와 더불어 죽기로 임치를 지키겠다고 다짐하며 한신을 기다렸다.

역하(歷下)를 떠난 지 사흘 만에 임치에 이른 한신은 역하에서 전해와 화무상의 20만 대군을 깨뜨린 기세로 성을 에워싸고 제왕을 불러냈다. 그러나 제왕도 재상 전횡도 보이지 않고 전광이란 낯선 장수가 문루(門樓)로 나와 스스로 재상이라 일컬으며 한신을 맞았다. 한신이 전광을 떠보듯 물었다.

“제왕은 어디로 갔느냐? 또 상국 전횡은 어찌되고 네가 상국이란 말이냐?”

“우리 대왕께서는 고밀로 가시었다. 그곳을 지키고 있는 대군과 즉묵(卽墨)에 진을 치고 있는 교동장군(膠東將軍) 전기의 군사를 합친 뒤에 너를 잡으러 돌아오실 것이다. 또 우리 상국(전횡)께서는 조금도 다치지 않은 우리 제나라의 기마대를 이끌고 영(영)박(博)으로 가셨다. 그곳에 흩어져 떠도는 역하의 20만 군을 다시 모아 네 등 뒤를 치기 위함이다. 거기다가 역이기의 속임수에 넘어가 어이없이 내주고 말았지만 제북(齊北)도 곧 대군을 일으켜 너희가 돌아갈 길을 막을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임시로 재상이 되어 임치를 지키기만 하면 된다. 이만하면 궁금함이 풀렸느냐?”

전광이 감출 것 없다는 듯 그렇게 털어놓았다. 듣고 보니 한신도 적지 아니 난감한 제나라의 대응이었다. 전광의 말대로 된다면 한신의 군사들이 거꾸로 적의 대군에게 사방으로 에워싸이는 꼴이 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신은 내색 없이 전광을 달래보았다.

“모두 힘을 합쳐 내게 맞서도 될까 말까 한데, 많지 않은 군사를 잘게도 쪼개 놓았구나. 흩어져 달아나는 토끼는 좋은 사냥개 몇 마리면 모조리 잡을 수 있다. 우리 대군은 이 임치부터 거둘 터인즉, 어떠냐? 어리석은 고집으로 맞서 버티다가 애꿎은 성안 군민들과 함께 죽겠느냐? 아니면 성문을 열고 우리를 맞아 새로운 천하를 여는 일에 끼어 보겠느냐?”

하지만 전광은 제왕이 믿고 임치를 맡길만한 장수였다. 껄껄 웃으며 한신을 내려보다가 준엄하게 꾸짖었다.

“너같이 함부로 주인을 바꾸는 종놈에게는 세상 모두가 너같이 비루한 인간으로 보일는지 모르지만 우리 제나라 사람은 그렇지 않다. 10만 군민이 성벽을 베고 죽을지언정 어찌 나라와 임금을 저버리고 살아남아 얼굴을 들 수 있겠느냐?”

그리고는 느닷없이 한군 쪽에다 화살 비를 퍼붓게 했다.

원래 한신은 공성전(攻城戰)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나라 아래위가 짜고 펼치는 계략이 길게 버티며 싸우는 것(지구전·持久戰) 같아 마음이 급해졌다. 우선 도성인 임치라도 빨리 우려 빼고 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음 날부터 공성에 들어갔다.

하지만 전광이 이끈 5000 군사가 워낙 제 장수를 닮아 죽기로 싸우는 데다 임치의 백성들도 힘을 다해 거들어 성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특히 힘으로 당당히 맞서다가 진 것이 아니라, 한나라의 속임수에 나라가 그 꼴이 났다는 게 성안 군민(軍民)들을 성나 일어서게 만든 듯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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