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질 마이스터’ LG전자 음향팀 권오석 책임연구원

  • 입력 2005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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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음향팀 연구실은 소비자 입장에서 소리를 듣기 위해 40평 아파트 거실 모양으로 꾸며져 있다. 권오석 LG전자 책임연구원이 홈시어터용 스피커의 음량이 고르게 출력되는지 컴퓨터로 테스트하고 있다. 사진 제공 LG전자
LG전자 음향팀 연구실은 소비자 입장에서 소리를 듣기 위해 40평 아파트 거실 모양으로 꾸며져 있다. 권오석 LG전자 책임연구원이 홈시어터용 스피커의 음량이 고르게 출력되는지 컴퓨터로 테스트하고 있다. 사진 제공 LG전자
“1년 동안 부숴버린 스피커가 500개가 넘습니다.”

권오석(41·사진) LG전자 음향팀 책임연구원은 ‘디지털 음색’을 만들어가는 음향기술 전문가. 2001년부터 LG전자가 만든 모든 홈시어터와 탁상용 차량용 오디오가 그의 손끝을 거쳤다.

가전업계에서는 권 연구원과 같은 사람을 ‘마이스터(거장)’ 또는 ‘골든 이어(황금귀)’라고 부른다. 음질을 듣고 제품 수준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은 휴대전화, 디지털TV, MP3플레이어 등 디지털 기기에서 성공을 거뒀지만 앰프, 스피커 등 전통적인 ‘아날로그 오디오’ 분야에서는 선진국보다 수준이 떨어졌다.

선진국에서는 음악 전공자가 가전업체에 입사하기도 하고 음향 전문가가 기업의 제품을 테스트하는 등 음향 분야의 노하우가 산업으로 연결된다. ‘음질 마이스터’라는 제도를 통해 음향 전문가를 고용하는 일본 켄우드 같은 기업이 대표적.

권 연구원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는 한국 기업의 실험 대상 중 하나다.

○ 모두 찢고 새로 디자인한다

11일 경기 평택시의 LG전자 디지털미디어 생산 공장.

회색 콘크리트 공장 건물의 철제문들 사이에서 나무로 만든 문 하나가 유달리 눈에 띄었다. 권 연구원이 근무하는 ‘TDR’(Tear Down & Redesign·찢어버리고 새로 디자인한다)실의 입구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소파와 에어컨, 탁자 등을 갖춘 8평 남짓한 아파트 거실 모양의 방이 나왔다. 창을 열면 베란다까지 있는 이곳이 일반 아파트 거실과 다른 점은 바닥과 베란다에 수많은 스피커와 음향 장비 및 공구들이 널려 있다는 것.

음향팀의 주 업무는 홈시어터용 앰프와 스피커 개발. 음향팀은 홈시어터 구매 고객의 특성을 살피기 위해 연구실을 40평형 아파트 거실 모양으로 개조했다. 고객 입장에서 음향을 듣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권 연구원을 포함한 연구원 4명은 ‘소리와의 전쟁’을 벌인다.

이들의 장점은 소리와 기술을 모두 안다는 것. 알토 색소폰 연주자로 일했던 권 연구원을 포함해 전원이 전기공학도이면서도 각각 성악, 작곡 등 음악 관련 일을 전공과 취미로 해 왔다. 해외 유명 업체에도 없는 이들만의 장점이다.

외부 잡음이 통제된 무향실(無響室)에서 테스트를 통과한 제품이라도 막상 TDR실에 설치되면 거실 환경에 따라 음질이 달라진다. 또 다양한 위치에서 최적의 음질을 들으려면 이곳에서 최종적으로 음 균형을 확인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은 설계도가 찢어지고 다시 디자인된다. ‘TDR’가 시작되는 것이다. 최근 이들이 개발한 ‘피아노블랙’ 홈시어터는 이곳에서 500대 이상 부서진 뒤 다시 만들어졌다.

○ 기술에 혼(魂)을 싣는다

음향팀에게 신제품 개발은 혼을 바치는 작업이다. 연구원 4명은 신제품 개발에 착수하면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술을 한 모금이라도 마시면 귀의 모세혈관이 팽창해 듣는 소리가 왜곡되기 때문이다.

테스트용 제품을 운반할 때는 아이를 안아 옮기듯 조심한다. 최근 개발한 피아노블랙 홈시어터를 잘못 운반하다 흠집을 낸 한 연구원은 권 연구원에게 불호령을 들었다. 제품에 흠집을 내는 마음이면 음질에도 흠집을 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권 연구원은 2002년에는 9개월 동안 퇴근하지 않고 연구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다 황달과 폐렴까지 얻은 일도 있다. 원인은 영양실조. 피아니스트였던 부인이 자신이 돈을 벌 테니 미국으로 이민을 가자고 제안할 정도였다.

권 연구원은 “좋은 소리는 주관적이어서 정답이 없지만 좋은 제품에는 많은 사람이 좋은 소리로 인정했다는 정답이 있다”며 “좋은 제품을 만들어 ‘LG의 소리를 만들어낸 마이스터’라는 평가를 받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평택=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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