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집지키던 9세 어린이, 사냥개 물려 참변

  • 입력 2005년 11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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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이 11일 권모 군이 숨진 사건현장을 가리키고 있다. 홀로 지내다 변을 당한 권 군의 가슴 아픈 사연은 도처에 우리 사회가 보살펴야 할 이웃이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 의왕=전영한 기자
경찰관이 11일 권모 군이 숨진 사건현장을 가리키고 있다. 홀로 지내다 변을 당한 권 군의 가슴 아픈 사연은 도처에 우리 사회가 보살펴야 할 이웃이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 의왕=전영한 기자
부모가 이혼한 뒤 외조부모에게 맡겨진 초등학교 3년생이 외조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우리를 탈출한 사냥개에게 참혹하게 물려 숨졌다.

11일 오후 3시경 경기 의왕시 내손동 비닐하우스에서 D초등학교 3학년생 권모(9) 군이 개에게 물려 숨져 있는 것을 담임교사 장모(54) 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장 씨는 “권 군이 이날 학교에 나오지 않아 집을 찾아가 보니 숨져 있었다”면서 “사냥개가 사납게 날뛰어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발견 당시 상황=권 군은 살림집을 겸한 비닐하우스 현관 바로 안쪽에서 양말만 신고 상하의가 모두 벗겨져 있었으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엎드린 자세로 발견됐다.

권 군의 몸은 수십 군데나 깊은 상처가 있었다. 또 개에게 끌려 다니며 긁힌 듯한 자국이 여기저기 있었다. 비닐하우스 밖 마당에는 찢겨진 권 군의 옷가지와 책가방 등이 흩어져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소방구조대 10여 명은 권 군을 물어 죽인 것으로 보이는 사냥개가 생포하기 어려울 정도로 날뛰자 권총 3발을 발사해 사살했다. 이 개는 몸길이가 130cm가량이었다.

경찰은 권 군이 10일 오후 7시경까지 친구와 놀았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따라 이날 늦게 귀가하다 사냥개에게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사건 현장=권 군이 숨진 비닐하우스는 의왕 백운호수에서 외딴길을 따라 200여 m 떨어진 외진 곳에 있다. 이 비닐하우스는 방 3칸과 부엌 등이 있으며 마당에는 개 염소 닭 등을 키우는 우리가 있다. 개 5마리가 각각 별개의 우리에서 살고 있었으며 숨진 사냥개가 있던 우리만 문이 열려 있었다.

▽권 군 주변=권 군 부모는 권 군이 돌이 갓 지났을 무렵 이혼했다. 이후 권 군 어머니는 재가해 자녀 2명을 낳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조부모는 권 군 어머니가 이혼의 아픔을 잊고 잘 살길 바라며 권 군을 자진해서 맡아 기른 것으로 전해졌다.

권 군 외조부 김모(61) 씨는 “딸이 가끔 손자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곤 했다”고 말했다.

김 씨 부부는 농사일을 위해 충남 당진을 하루 이틀씩 오가며 지냈다. 지난달까지 권 군과 함께 지내던 이모는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김 씨 부부는 이번 주 추수를 하기 위해 평소보다 길게 집을 비워야 했기 때문에 월요일 권 군이 먹을 밥을 해 놓고 라면을 사둔 뒤 당진으로 갔으며 매일 안부 전화를 했다. 10일 아침에도 권 군과 통화했다. 이들은 11일 귀가할 준비를 하던 중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이들은 집에 도착하자 오열했다.

권 군의 일기장에는 ‘할아버지가 개 먹이를 싣는 것을 도와 줬다’ ‘친구들과 컴퓨터를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삼촌 집에 들렀다’ 등 어린이의 평범한 일상이 담겨져 있었다.

D초등학교 관계자는 “권 군은 불우한 환경에서 지내면서도 학교생활이 모범적이어서 지난 학기에 장학금까지 받았는데 이런 일을 당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의왕=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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