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 고객정보 멋대로 사고판다

  • 입력 2005년 11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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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박모(40) 씨는 얼마 전 대리운전사가 낸 사고를 책임져야 했다. 평소 믿고 이용한 A업체가 연결해 준 대리운전사가 무보험 상태였던 것. A업체는 “우리 회사가 아니라 다른 회사의 직원을 연결해 준 것일 뿐”이라며 “그 회사가 보험에 가입했는지는 고객이 확인해야 한다”고 발뺌했다. 박 씨는 “뒤늦게 대리운전 업체가 공동전화망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마땅한 대응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대리운전 회사들이 고객의 동의 없이 개인 정보를 교환하고 있었던 것.》

이처럼 대리운전 이용자들의 개인 정보가 줄줄 새고 있다. 수도권의 주요 대리운전 회사들은 자사에 걸려 오는 사용자들의 개인 정보를 상세히 기록해 컴퓨터에 저장해 이를 공유하거나 판매하고 있다.

더욱이 일부 대리운전 회사들은 싼 이용료를 제시해 전화를 유도한 뒤 개인 정보를 집중 수집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광고를 발송하거나 신규 업체에 판매하고 있다.

∇고객 정보 수집에 혈안=최근 급증한 대리운전 회사들은 유흥가에 전단지나 명함을 돌리던 것에서 벗어나 휴대전화를 이용한 대량 e메일 발송으로 광고 방식을 바꾸고 있다.

이들 회사에 한 번이라도 전화를 건 고객의 이름, 연락처, 주소, 주요 행선지 등 상세한 정보는 물론 잘못 걸린 전화, 일반 문의 전화도 모두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고 있다.

한국대리운전협회에 따르면 국내 5000여 개의 대리운전 회사 가운데 60%가량이 이렇게 모은 개인 정보를 취합해 공동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 중랑구의 한 대리운전 회사 관계자는 “영세 업체들은 대부분 공동전산망을 운영하면서 먼저 신청 정보를 보는 업체가 대리운전사를 내보낸다”면서 “이들은 수익금의 일부를 신청 접수 회사에 넘겨주는 식으로 정보를 공유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대리운전 회사 사장은 본보 취재팀의 문의에 “사업을 인수하면 저장된 고객 정보 100개를 포함해 전화와 무전기 등 일체를 1500만 원에 넘기겠다”고 제의하기도 했다.

개인 정보 수집만을 위해 싼 가격으로 전화를 유도하기도 한다.

서울 양천구의 한 회사 대표는 “‘서울 전역 5000원’ 등으로 광고한 뒤 손님들이 전화하면 ‘운행할 수 없다’고 말하고 걸려 온 전화번호를 모두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해 대량 문자 발송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털어놨다.

∇피해 보는 소비자=수집된 개인 정보는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이들 업체는 고객의 집주소를 이용해 ‘블랙리스트’를 만들기도 한다. 상담원들은 블랙리스트에 오른 고객에게 전화가 오면 통화를 차단하거나 처음부터 “운전사가 없다”는 식으로 서비스를 거부하기도 한다.

서비스 항의 전화에 대한 전화 차단, 무보험 영세업자 자동 연결로 인한 피해 사례 등이 한국소비자보호원 게시판 등에 속속 접수되고 있다.

진보네트워크 정책국 김정우(金政佑) 간사는 “현재 민간 업체가 영리 목적으로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지만 이용하지도 않은 사람의 개인 정보를 얻어 스팸 문자메시지를 발송하는 것은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 김민섭(金玟燮) 과장은 “현재 의원 발의된 개인정보보호 기본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민간 업체의 정보 수집을 규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피해 유형▼

1. 공동콜센터 통해 무보험 대리업체에 무작위 연결

2. 고객 집 주소 확인 뒤 비선호 지역 서비스 거부

3. 서비스 항의자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해 전화 차단

4. 시중가보다 낮은 사용료로 전화만 유도한 뒤 서비스 거부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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