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통일부 관계자 “北취재저지, 南측 기자가 사과하라”

  • 입력 2005년 11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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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부터 10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린 제12차 남북이산가족상봉행사 기간에 통일부 관계자가 남측 기자들에게 북측에 대한 사과를 종용하는 등 부적절한 언동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통일부 소속인 홍모 심의관은 방북하기 전 공동기자단에 “울고 짜는 이산가족의 모습은 식상하다. 이번에 내가 기회를 줄 테니 취재기자나 사진기자 모두 밝은 모습의 미담 기사와 사진을 적극 발굴해 달라”면서 “어느 언론이 잘했는지 나중에 보도 내용을 평가해 언론위원회인지 관련 기관에 (내가 기사를) 추천해 주겠다”고 말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현재 언론위원회라는 언론 관련 기관은 없기 때문에 홍 심의관의 발언은 언론상을 주는 언론 단체를 지칭한 것으로 추정된다.

11일 이산가족상봉행사 공동기자단에 따르면 8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상봉행사에서 북한 측은 1987년 납북된 동진호 선원의 가족 상봉에 관한 보도에서 ‘납북’이란 표현을 문제 삼아 방송의 송출과 취재를 한때 저지했다.

이날 오후 홍 심의관은 이 사건과 관련해 남측 관계자 회의를 마친 뒤 남한 기자들에게 ‘우리 기자단이 사과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공동기자단 관계자는 “홍 심의관이 ‘남한 기자단이 납북이란 표현을 써서 북측을 자극했으므로 원만한 해결을 위해선 양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사실상 남한 측의 사과를 종용했다”고 밝혔다.

홍 심의관은 또 9일 오전 공동기자단 일부 관계자에게 “북측은 이런 식으로 우리(남한 측)가 나오면 행사를 진행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라며 “취재를 못하면 우리 기자단만 손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일부 기자들은 “기사화된 ‘납북’이란 표현은 우리 정부의 일관되고도 공식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사과할 이유가 없다”며 “정부 관계자가 정부의 공식 용어인 ‘납북’이란 표현의 사용 여부에 대해 상부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등 북측에 시비의 빌미를 만들어 줬다”고 지적했다.

기자들은 또 “납북된 선원 가족의 상봉이 예정돼 있던 상황에서 북측의 부당한 요구에 항의하기는커녕 정당한 우리 정부의 입장조차 제때 정확히 전달 못한 것은 문제”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통일부 기자단은 이 사건과 관련해 11일 북한 측의 기사 검열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본보는 이날 홍 심의관과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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