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여운 가득한 詩…‘빠블로 네루다’

  • 입력 2005년 11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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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블로 네루다/애덤 펜스타인 지음·김현균 옮김/704쪽·2만5000원·생각의나무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하나의 절망의 노래’와 ‘마추픽추의 산정(山頂)’, 영화 ‘일 포스티노’…. 칠레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사진)를 말할 때, 문학과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떠올릴 만한 것들이다. 여기서 시인 김용택이 엮은 시집 ‘시가 내게로 왔다’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아름다운 제목이 바로 네루다 시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2005년 늦가을, 네루다의 평전이 처음 우리에게로 왔다. 20세기 최고의 시인으로 꼽히는 네루다 삶의 진면목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

칠레의 대자연 속에서 시인의 꿈을 키웠던 유년기, 보헤미안적인 삶에 탐닉했던 학창시절, 외교관이 되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유럽을 유목하던 시절, 스페인 주재 외교관으로서 스페인의 정치에 적극 개입해 결국 아르헨티나로 망명해야 했던 시절…. 낭만적이면서도 파란만장했던 네루다의 삶을 추적한 책이다. 저자는 영국의 저널리스트.

이 평전의 특징을 꼽으라면 진솔함이다. 그동안 해외에서 출간된 몇 권의 평전이 네루다를 둘러싸고 있는 신화적이고 환상적인 색채를 부각시켰다면 이 책은 있는 그대로, 인간 네루다의 면모를 그려내는 데 역점을 둔다.

일견 모순덩어리 같은 네루다의 삶에 주목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사실, 네루다의 삶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권력을 부정하는 보헤미안적 아나키스트에서 권력 중심의 스탈린주의자로의 변신, 개인 통치를 비판하면서도 스탈린의 독재와 민중 탄압을 인정한 사실, 두 여인에게 동시에 구애했던 일, 세 번째 부인의 조카와 사랑에 빠졌던 일…. 범인의 입장에서 보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를 설명하면서 저자는 네루다의 사람 관계에 주목한다. 네루다는 이데올로기와 관계없이 많은 사람과 교유했고 많은 사람의 영향을 받았다. 사르트르, 보르헤스, 체 게바라, 마오쩌둥, 스탈린, 히틀러, 트로츠키…. 그가 직간접적으로 교유한 사람들의 이데올로기의 스펙트럼은 실로 광대하다. 여기서 저자는 결국 시인의 운명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주의적 세계관과 마주친다. 그 자유주의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인생은 모순덩어리처럼 보이는 것이다.

많은 여운을 남기는 시가 좋은 시다. 네루다의 모순덩어리 같은 삶, 그래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삶, 거기서 여운 가득한 시가 나온 것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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