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플라이트 플랜’…조디 포스터의 심리스릴러

  • 입력 2005년 11월 11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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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디 포스터가 ‘패닉 룸’에 이어 딸을 지키는 강력한 모성애를 보여 준 영화 ‘플라이트 플랜’. 사진 제공 브에나비스타인터내셔널코리아
조디 포스터가 ‘패닉 룸’에 이어 딸을 지키는 강력한 모성애를 보여 준 영화 ‘플라이트 플랜’. 사진 제공 브에나비스타인터내셔널코리아
자살한 남편의 시신을 고향으로 옮기기 위해 독일발,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카일(조디 포스터). 그녀는 딸과 함께 관이 실린 비행기에 오른다. 수만 마일 상공을 나는 비행기 안에서 깜박 잠이 든 그녀는 깨어나자마자 깜짝 놀란다. 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딸을 본 목격자는 어디에도 없다. 카일은 기내를 샅샅이 뒤지지만, 이게 웬일인가. 기장(숀 빈)의 확인 결과 딸은 얼마 전 사망해 독일의 한 영안실에 누워 있다는 것이다. 졸지에 카일은 딸의 죽음을 믿고 싶어 하지 않는 신경쇠약 환자로 몰린다. 딸은 정말 죽은 걸까.

‘플라이트 플랜(Flight Plan)’은 9·11테러가 아니었다면 결코 나오지 않았을 영화다. 카일이 함께 탑승한 아랍인을 딸의 납치범으로 지목하자 백인 승객들이 “뭔가 수상쩍었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모습은 9·11 이후 미국인들이 아랍인에 대해 갖는 근원적 공포와 집단 피해망상을 꼬집는다. 중반까지 영화는 의심과 반목과 자기불신이 맞물리는 썩 잘 짜인 심리스릴러의 모습을 띤다. 관객의 시각과 심리는 카일에게 포개어지고, 관객은 ‘환장할 만한’ 카일의 심정을 대리 체험한다.

9·11과 함께 이 영화를 끌고 가는 또 다른 쌍발 엔진은 조디 포스터. 올해로 43세인 그는 ‘패닉 룸’ 이후 3년 만에 출연한 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딸을 지킨다’. 영화 속의 조디 포스터는 (이혼을 통해서든 사별을 통해서든) 독립적 여성일 뿐 아니라, 폭력적인 남성에 대항해 동성(同性) 자식인 딸을 사수하는 강력한 모성애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그가 실제 명문 예일대 출신의 엘리트란 점과, 정자은행에서 자신이 직접 고른 품질 좋은 정자로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기를 자처한 ‘싱글 맘’이란 점이 극중 캐릭터에 상업적으로 투사된 결과로 보인다.

문제는 마무리다.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는 함량과 설득력이 떨어진다. 영화는 전모가 밝혀지는 그 순간부터 몹쓸 주술에라도 걸린 듯 할리우드적인, 너무나 할리우드적인 결말을 향해 옆도 돌아보지 않고 돌진한다. ‘여자보다 독한 게 엄마’라는 만고불변의 진리, 그 이상의 뭔가를 충분히 얘기할 수 있었던 이 영화가 ‘용두사미 모성 스릴러’에 안착한 것도 어쩌면 9·11의 그림자 탓인지 모른다. ‘악당은 지옥으로…’, 그 이상도 이하도 요구하지 않고 또 필요로 하지도 않는. 독일 출신 로베르트 슈벤트케 감독. 11일 개봉. 12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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