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당신의 패션 나이는?

  • 입력 2005년 11월 11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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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도 나이 들어 보이지 말아야지!”

30대 후반으로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탤런트 김희애가 화장품 CF에서 한 말이다. 세월의 흐름을 거부하는 이 말은 여성들에게 화두가 됐다.

최근 여성 패션계는 ‘에이지리스(ageless)’ 바람이 불고 있다. 아이를 낳은 뒤에도 몸매를 유지하는 30, 40대도 백화점 캐주얼 매장에서 표준인 55 사이즈의 옷을 주저 없이 고른다.

그런데 패션의 연령 파괴에는 끝이 없을까. 30, 40대 여성들이 국내 패셔니스타(fashionista)로 손꼽히는 20대의 정려원처럼 입어도 괜찮을까. 아니면 ‘믹스 앤드 매치’의 달인으로 통하는 시에나 밀러(영국 배우)처럼 부스스한 머리에 시폰 원피스와 터프한 가죽 재킷의 언밸런스가 어울릴까? 나이 탓을 하며 망설이다가 우아한 무채색 정장을 고집하면 지루하다는 핀잔도 듣는다는데….

패션 전문가들은 어린 나이에 지나치게 성숙한 옷차림을 하거나, 나이 든 이들이 젊게만 보이려 하거나 트렌드를 무시하는 것 등은 모두 ‘촌티 패션’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한다.

패션 연령이 모호해지는 21세기, 그럴수록 나이에 알맞은 옷 입기(age-appropriate dressing)가 궁금해진다.

모델 이미희를 통해 20대와 30대에 어울리는 패션을 연출해 봤다. 20대는 티어드 미니스커트에 짧은 재킷으로 톡톡 튀는 이미지를, 30대는 슬리브리스에 볼레로와 스카프, 하프 코트를 겹쳐 입은 레이어드 룩을 선보이고 있다.

○ 패션에 나이가 없다고?

최근 미국 주간지 ‘피플’의 웹사이트에서는 흥미로운 투표가 진행됐다. 올해 19세인 배우 린지 로한, 47세의 배우 샤론 스톤 등 톱스타들이 각각 다른 패션을 선보인 사진 2장 씩을 두고 나이에 맞는 옷차림을 물어본 것.

독자들은 한 스타의 두 사진 중 하나에 90%에 이르는 몰표를 줬다. 나머지 사진 한 장은 나이에 맞지 않는 패션으로 평가받은 것이다.

로한의 경우 끈이 없고 짧은 구찌 드레스 차림의 사진에 93%의 독자가 투표했다. 반면 우아한 샤넬 블라우스와 스커트에 선글라스를 낀 사진은 7%의 지지밖에 받지 못했다. 두 아이의 엄마인 스톤은 비대칭 라인의 화려한 미니 드레스(5%)보다 우아한 핑크빛 롱 실크 드레스(95%)를 입었을 때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뉴욕에서 퍼스널 쇼핑 서비스 업체를 운영하는 에비 고렌스타인 씨는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50세 여성이 무리하게 30세로 보이려 한다면 50세보다 더 들어 보일 것”이라며 “애 엄마처럼 입는 소녀보다, 소녀처럼 입는 애 엄마가 더 이상하다”고 말했다.

제일모직 정구호(43) 상무는 한국 패션계의 대모인 디자이너 노라노(본명 노명자) 여사를 처음 만났을 때 놀라움을 잊지 못한다.

“70대인 그분이 롱 블랙 드레스에 트위드 재킷, 긴 목걸이를 하고 나왔을 때 탄성이 나왔죠. 한국에서 그 나이라면 모두 긴 스커트 정장입니다. 미국과 달리 한국인의 패션은 너무 빨리 늙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 상무는 “40대에도 카고 팬츠(양 옆에 주머니가 달린 바지)를 입어도 된다”며 “다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카고 팬츠를 입고 나가도 될 만한 자리가 줄어든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대신 코디가 관건이다. 20대에 헐렁한 티셔츠와 면 카고 팬츠를 입어 힙합 스타일을 연출했다면 40대에는 울로 된 카고 팬츠에 검은색 상의를 입고 재킷이나 코트를 걸치면 된다.

○ 20대, 네 멋대로 해라

20대 패션에 대해 전문가들의 조언은 한결같다. ‘네 멋대로 해라.’

20대의 경험에 따라 이후 스타일이 좌우된다. 정 상무는 “젊을 때는 매장에서 옷을 사지 않고 그냥 입어 보는 것도 공부”라며 “이때 치마가 안 어울린다며 바지만 고집하면 평생 그 스타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말한다.

대한항공과 소니 사이버샷 CF의 주인공인 모델 김원경(24)은 탁월한 패션 감각으로 유명하다. 쇼핑 장소는 동대문 제일평화시장이나 압구정동의 수입 보세 숍.

대신 청바지는 브랜드 제품을 사는데 50여 벌 갖고 있으며 티셔츠나 청바지를 트렌드에 맞게 고쳐 입기도 한다. 둥근 네크라인의 티셔츠를 가위로 잘라 V넥으로 만든 뒤 민소매 티셔츠와 겹쳐서 입는 식이다. 그는 “어린 나이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휘감으면 오히려 촌스럽다”고 말했다.

20대의 패션 키워드는 도전과 실험이다. 패션지 ‘바자’ 미국판의 에디터 제니퍼 알파노 씨는 10월호에서 20대에게 “옷 입기를 심각하게 여기지 말고 재미를 추구하라. 샤넬 재킷같은 클래식 아이템을 선택했다면 목걸이를 주렁주렁 걸쳐 전체적으로 명랑한 분위기를 만들어라”고 조언했다. 할리우드 패션 아이콘의 스타일을 참고하되 자기 만의 것으로 만든다. 로맨틱한 레이스 원피스에 인디언풍의 술이 달린 부츠 등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아이템을 과감하게 ‘믹스 앤드 매치’해야 한다.

○ 30대, 자기 스타일을 찾아가라

KBS 2TV ‘장밋빛 인생’에서 30대의 수입 화장품 회사 이사로 나왔던 탤런트 이태란(30)은 패션 스타일로도 화제를 모았다. 정장 바지에 특이한 디자인의 재킷이나 블라우스와 카디건을 입었고,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을 때는 핑크색 가죽 재킷이나 모피 볼레로를 걸쳐 화려함을 줬다. 이태란의 스타일리스트 홍은하 씨는 “성공한 30대 커리어 우먼의 시크(chic) 이미지를 살리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30대는 스타일을 형성하는 단계다. ‘믹스 앤드 매치’를 하되 20대처럼 과감하기 보다 정제된 스타일로 표현해야 한다.

30대 주부들에게 인기높은 ‘김희애 스타일’을 만들었던 스타일리스트 정윤기(인트렌드 대표) 씨는 “다른 길이, 다른 소재, 다른 컬러의 아이템을 다양하게 겹쳐 입는 레이어드 룩이 좋지만 색상은 세 가지가 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30대는 또 양보다 질을 따지기 시작해야 하는 시기다. 트렌드를 따르되 기본 아이템은 20대보다 좋은 것으로 장만해 갖고 있는 아이템과 믹스 앤드 매치한다. 패션 리더로 꼽히는 워싱턴 포스트지의 한국 특파원 조주희(36) 씨는 “청바지를 입더라도 가방과 구두에는 신경을 쓴다”며 “가방은 ‘짝퉁’을 사지 않지만 ‘동대문표’라도 독특함이 느껴지면 구입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너무 전통적인 백 보다는 최근의 클로에 패딩턴 백처럼 트렌디하면서 고급스러운 백이 30대에겐 어울린다. 미국의 패션 전문가 로이드 보스턴 씨도 “30대에는 질 좋은 캐시미어 스웨터, 가죽 팬츠를 장만하고 구두는 반드시 좋은 것을 신으라”고 조언했다.

○ 40대, 자기 스타일을 확립하라

CNP차앤박 피부과 차미경(41) 원장은 대학생 때 별명이 ‘공포의 빨간 바지’였다. 시험 기간만 되면 빨간 바지에 하이힐을 신고 도서관에 나타나 모르는 학생이 없었다. 차 원장은 “예전에는 디자인이 화려한 오브제 옷을 좋아했지만 이젠 무난한 막스마라에 눈이 간다”며 “어릴땐 옷은 나를 표현하는 도구라 생각했는데 이젠 남들이 보기에 편안한 것도 신경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명지전문대 장미희(48·배우) 연극영상과 교수는 아방가르드(전위적인) 패션을 튀지 않고 멋스럽게 입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마르탱 마르지엘라, 드리스 반 노튼 등 독창적인 벨기에 디자이너를 좋아하는 그는 “40대에 찾은 내 스타일은 디자이너의 실험 정신이 살아 있는 디자인을 요란하지 않게 입는 것”이라고 말했다. 디자인이 강렬하면 색을 어둡게 하고, 구두와 가방은 클래식 제품으로 선택한다.

40대는 20, 30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 스타일을 확립해 가장 멋스러운 옷 입기를 연출할 수 있는 시기다. 모피 보석 등 고가 아이템이 어울리는 때다. 정장이 기본이지만 트렌드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단순한 라인의 정장을 입었다면 올해 유행인 시폰 블라우스에 화려한 벨트를 코디하는 식이다. 전체 의상의 30%는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이 좋다.

로이드 보스턴 씨는 “40대부터는 속옷을 제대로 갖춰 입어야 옷 맵시가 살아난다”며 “무채색의 정장 안에 화려한 속옷으로 기분 전환을 시도하고 섹시 핸드백과 구두를 매치하라”고 말했다. 구두와 가방은 30대보다 클래식 분위기의 제품이 좋다.

○ 50대부터는 우아함과 여성스러움

SBS 주말 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 탤런트 한혜숙 정혜선은 각각 50대의 며느리와 70대의 시어머니로 나오는데 화려하면서도 ‘오버’하지 않는 중년과 노년 여성의 스타일을 보여 준다. 한혜숙은 진주빛 스커트 정장이나 분홍색 블라우스에 브라운 스커트 등 단정하고 차분한 분위기. 실제로 60대인 정혜선은 오히려 며느리보다 더 화려하게 자주색 바지에 보라색 체크 스웨터, 빨간 트윈 니트에 같은 소재의 빨간 스커트로 ‘고운 할머니’라는 인상을 준다.

바자 미국판은 50대 여성들에게 하루는 보헤미안풍, 하루는 러시안풍 등 스타일을 자주 바꾸는 것은 포기하라고 조언했다. 젊은 감각의 디자인 또는 원색의 아이템으로 한 군데 포인트를 주는 것이 무난한다.

최근 자신의 스타일에 대한 책 ‘이너뷰티’를 펴 낸 탤런트 박정수(52)는 “나이 든 여성들이 대부분 ‘한 벌 정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스커트에 블라우스와 니트, 바지와 톱에 롱 카디건 등 단품 위주의 코디를 하면 젊어 보이면서도 우아하다”고 말했다. 50대에도 믹스 앤드 매치는 유효하다는 얘기.

디자이너 지춘희 씨는 “나이가 들수록 디자인과 소재가 자연스러워야 한다”며 “디자인은 단순하나 캐시미어 실크 등 고급스러운 천연 소재의 옷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글=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정윤기 씨가 제안하는 세대별 스타일▼

▽20대 : 실험▽

◇콘셉트=도전하라! 어울리지 않을것 같은 아이템을 과감하게 매치.

◇아이콘=정려원 이효리 하지원 전지현 손예진

◇스타일=빈티지풍 캐릭터 티셔츠+클래식 트위드 재킷+벨벳 버뮤다 팬츠

시폰 원피스+재킷+줄무늬 머플러+빅 사이즈의 가죽 가방+플랫 슈즈

◇브랜드=오브제, 96ny, 마인, 안나수이, 클로에, 디스퀘어드,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

▽30대 : 스타일 형성▽

◇콘셉트=20대의 모험심을 조금만 버리고 기본 아이템에 관심을 기울여라.

◇아이콘=이태란 이혜영 변정수 고현정 김희애 신애라 김남주

◇스타일=블라우스+캐시미어 소재의 캐멀 브라운 니트+정장 바지+트렌치 코트(캐서린 헵번 스타일)

◇브랜드=타임, 프라다, 셀린느, 로에베, 엠포리오 아르마니, 랄프로렌, 마르니, 돌체 앤 가바나

▽40대 : 스타일 확립▽

◇콘셉트=패션 품질을 유지. 브랜드 가방과 디자이너 슈즈에 관심을 기울여라.

◇아이콘=황신혜 이미숙 장미희 김미숙 견미리 양미경

◇스타일=진주 장식이 달린 톱+실크 스커트+울 소재의 벨티드 코트+스카프

◇브랜드=랑방, 로샤스, 발렌티노, 샤넬, 질 샌더

▽50대 : 우아함 추구▽

◇콘셉트=스타일링을 통제하는 현명함. 여성스러운 단품들을 정장 스타일로 매치.

◇아이콘=박정수 한혜숙

◇스타일=선이 단순한 정장, 트윈 니트에 슬림 팬츠

컬러는 트렌드를 따르는 것도 좋다.

◇브랜드=롤로피아나, 센 존, 에스까다, 나르시소 로드리게즈

▼내 나이에 맞는 메이크업▼

▽20대▽

어떻게 해도 예쁘게 보이는 시기. 전지현처럼 깨끗한 피부를 살리는 투명 메이크업이 좋다. ‘김청경 헤어 페이스’의 김청경 원장은 “투명 메이크업을 위해 파운데이션을 얇게 발라야 하지만 그 위에 파우더를 많이 바르면 탁해 보인다”며 “파우더의 양을 조절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퍼프에 파우더를 묻힌 뒤 살짝 털고 이마와 턱부터 바른 뒤 남은 것을 뺨에 발라 촉촉하게 표현한다. 화장을 얇게 한다며 트윈 케이크만 쓰면 화장이 더 두꺼워진다.

눈썹을 지나치게 가늘게 만들면 나이들어 보인다. 원래의 눈썹을 최대한 살려 지저분한 곳만 정리한 뒤 빈 틈만 섀도로 메워 준다.

▽30대▽

이영애처럼 지적이면서 깔끔한 메이크업이 어울린다. 눈과 입가의 탄력이 20대보다 떨어지므로 파운데이션과 파우더의 기능을 함께 갖춘 제품이 좋다. 30대 중반 이후는 피부가 전체적으로 건조해지기 때문에 눈 밑에는 파운데이션을 최대한 얇게 바르고 파우더는 얼굴을 두드리고 남은 것으로만 살짝 눌러 준다. 감추고 싶은 부분에는 컨실러를 사용하는데 밝은 톤과 어두운 톤이 함께 있는 제품을 선택해 밝은 톤은 눈 밑 다크서클에, 어두운 톤은 잡티에 발라준다. 섀도나 립스틱은 펄감이 있는 것을 써야 얼굴에 생동감을 줄 수 있다.

▽40대▽

잡티나 주름이 더 많아진다. 메이크업 전에 보습 제품을 충분히 써야 한다. 컨실러를 사용하고 눈가나 입가는 소량의 파운데이션만 스치듯 바른다. 태평양 미용교육팀의 임희진 씨는 “이마와 코 등 T존 부위에만 파우더를 사용하고 피부가 많이 건조하면 파우더 사용을 자제하라”고 말했다. 30대보다 약간 색감이 드러나는 화장이 좋다. 살구색이나 베이지 계열의 자연스러운 섀도 색상은 칙칙해 보일 수 있으므로 하늘색 핑크색 보라색을 사용하는 게 더 젊어 보인다. 은은한 펄감이 있는 제품을 선택한다. 눈매가 처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눈꼬리에 짙은 색 섀도로 포인트를 주고 아이라인도 올려 그린다. 40대에는 입술에 세로 주름이 생기기 시작하므로 립스틱을 바르기 전에 반드시 립라인을 그린 뒤 립스틱으로 채워준다.

▽50대 이상▽

갱년기가 오면서 얼굴이 다소 붉어진다. 젊을 때는 붉은 기가 있는 파운데이션이 화사해보이지만 나이가 들면 노란기가 도는 파운데이션을 선택해야 한다. 리퀴드 타입보다 촉촉한 크림 타입이 좋다. 블러셔(볼터치)도 많이 하지 말고 얼굴 윤곽 부분에만 살짝 해 줘야 한다. 김청경 원장은 “50대가 되면 눈이 더 처지기 때문에 눈보다 입술을 선명하게 강조하는 메이크업이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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