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묵]‘千年古都’와 방폐장

  • 입력 2005년 11월 11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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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오랜만에 전북 고창 선운사를 찾았다.

은은한 단풍과 그림 같은 개울이 고즈넉한 산사와 어우러져 “역시 선운사”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선운사 진입로를 따라 이어진 대규모 공사장이 모처럼 들뜬 기분을 상하게 했다. 선운사 진입로는 동백꽃과 더불어 이 절의 대표적인 구경거리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길이다.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불가피하게 대규모 위락단지를 조성하고 있다는 설명이었지만 왠지 씁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선운사 골째기로/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동백꽃은 아직 일러/피지 안했고/막걸리집 여자의/육자배기 가락에/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디다/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디다’(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미당(未堂)의 시비 앞에 서서 지하에 있는 그가 시끌벅적한 ‘선운사 동구’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졌다.

이는 선운사에만 있지는 않은 일이다. 소득 수준이 향상되고 주5일제가 실시되면서 전국이 관광지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올 한 해 굵직한 개발정책이 유난히 많이 쏟아져 나온 것도 한몫을 했다. 행정수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신도시, 뉴타운 건설과 고속철 분기역, 혁신도시, 기업도시 선정 등등….

그 과정에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안팎으로 갈등을 빚었다. ‘개발이냐, 보존이냐’는 논쟁도 그치지 않고 있다. 이는 지역사회와 주민의 총체적 이익을 면밀히 따져야 하기 때문에 쉽게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개발이든 지역의 여건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에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최근 방폐장을 유치한 경주는 더욱 그렇다.

경주의 지역언론은 연일 ‘개발붐’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지역인사는 경주의 ‘천년 고도’ 브랜드가 훼손될 것을 우려한다고 전해진다. 경주는 로마나 이스탄불 등 세계적인 역사도시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영화(榮華)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유적 보존에서는 허술하다는 지적을 받은 지 오래다.

로마는 아예 유적발굴지역과 개발지역을 인위적으로 구분한 결과 신구의 문화가 멋들어지게 공존하는 도시가 됐다. 다른 선진국에서도 유적이 있는 경우 도시개발을 아예 중지하거나 변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적을 깔고 앉아 아파트 단지를 지은 경주와는 천양지차다.

태국만 해도 왕조의 발상지인 수코타이의 주민들을 신도시를 건설해 이주시키고 고궁과 절터, 불상 등을 원형대로 유지해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같은 일들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경주시민들이 그동안 받은 불이익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방폐장 유치를 무분별한 개발의 방편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를 천년 고도의 이미지를 격상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줄어드는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 미국의 한 연구도 문화유산 관광이 일반 관광보다 관광객 평균 소비지출과 여행기간이 1.5배가량 많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경주지역 한 인사는 “방폐장은 말하자면 종가집에 폐기장이 설치된 것이기 때문에 이를 과학도시와 직결시키는 것은 무리”라며 “방폐장 효과는 반드시 역사문화도시 기반 조성에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묵 사회부장 y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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