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올해 들어 잇달아 펴낸 책들은 모두 아프리카에 대한 체험들을 거름으로 삼고 있다. 수필집 ‘아카시아’(2월), 시집 ‘루시’(6월), 그리고 이번에 사진작가 김중만 씨와 함께 펴낸 사진·시집 ‘아프리카 아프리카’(생각의나무)까지.
그는 1992년 국제사랑의봉사단의 일원으로 처음 케냐에 갔다. 보름간이었다. “끝도 없는 풀밭과 황무지, 텅 빈 거기에 관능이라 해야 하나, 뭔가 잉태되고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푸근하더군요.” 그리고 마흔 살 때 거기 살러 갔다. 흙벽돌로 마사이 기술학교를 짓고 악기와 탈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아이들은 소 하나씩 소 하나씩 몰고/뒷문을 내 어디까진가 가서/거대한 구름과 놀고 있었다/나는 돌아다니는 상처의 주인/네 땅에 이르러 상처 학교를 세우고자 하는/이 입장에도 죄가 있을지 몰라’(‘광야에 학교 부지 20에이커를 사다’ 일부)
황 씨는 그가 정작 힘을 쏟은 건 ‘함께 놀기’였다고 했다. 허름한 유치원도 세워놓고 물 길러 온 마사이 주부들과 어린이들이 그림 그리고, 영어도 배우게 했다. 유치원 이름은 보마 스쿨. 보마는 ‘소똥’이란 뜻이다.
“거기서 소똥만큼 많이 쓰이는 걸 본 게 없어요. 흙이랑 마른 풀과 섞어 집을 짓지요. 비 올 때 추우면 벽에서 소똥을 도로 떼어 내 땔감으로 씁니다. 소똥을 뭉쳐서 공삼아 차고 놀기도 하지요.”
사료를 먹지 않는 소의 똥에선 거의 냄새가 안 난다. 하지만 그걸 생활 재료로 쓰는 사람들에게 삶은 힘든 것이었다. 배우지 못하고, 배고픈 이들이 많았다. 물 길러 100리 길을 갔다 오는 아낙네도 있었다.
‘호수 밑에 도시보다 더 넓은 소금밭이 있다는 세상 서쪽을 홍색 여자, 바위산의 멱살 근처까지 치켜들어간 길을 안간힘으로 걷고 있다. 나는 그 뒤에서 짐 싸 든 그녀의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가면서 젖 빨리는 그녀는 목에 매달린 태양을 한쪽으로 밀어보며 자꾸만 이마를 쓸며 눈을 닦는다. 독수리가 따라오자 육안으론 보이지 않는 붉은 울음을 펑펑 울며 소금보다 짠 젖을 먹였다.’(‘보호구역’ 일부)
그는 올해 두 번 아프리카에 갔다. 5월에는 케냐로, 9월에는 탄자니아로. 지난해 10월엔 친구들과 아프리카 사람들을 돕자는 취지에서 ‘피스프렌드’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일단 아프리카에 가서 구호물자를 나눠주고 나면 절대 친구가 못 됩니다. 준 자와 받은 자로 나누어지지요. 그래서 일단 친구부터 되고 나서 돕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했어요.”
이번 책에서 번 돈도 그런 프로그램에 쓰인단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실행하려고 내년 1월 ‘피스프렌드’와 함께 다시 아프리카로 간다. 그는 “마사이 족은 소를 아끼는데, 아이들은 송아지와 같은 방에서 자란다. 그런 관계처럼 아무 허물도 없이 그 사람들과 어울릴 거다… 그러면 또 나중에 어떤 시가 나오겠지” 하고 말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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