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대근]盧정부 4代 검찰총장의 복무방침

  • 입력 2005년 11월 1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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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시작된 일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검찰총장이 취임하면 그의 ‘복무방침’을 새로 내거는 게 검찰의 관행이다. 짧은 어구(語句)로 검찰의 책무를 정리한 총장 스스로의 다짐이자 국민과의 약속이다. 얼마 전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반발해 사표를 던진 김종빈 전 총장의 복무방침은 ‘인권을 존중하는 정의로운 선진 검찰’이었다.

검찰총장 복무방침에는 그 시대 검찰의 모습이 녹아 있다. 유신시대 어느 총장은 ‘서정쇄신 선도, 사회기강 확립’을 복무방침으로 내걸었다. 당시 국정 지표의 복사판이다. 정치권력과 검찰의 협력 관계가 이 정도였다. 공모(共謀) 관계 수준이다. 전두환 정권 초기에 등장한 ‘새 질서 주도, 국민을 위한 봉사’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과 봉사가 따라붙긴 했지만 군부 독재정권이 강조한 ‘새 질서’에 방점(傍點)이 찍힌 복무방침이었다.

겉으로나마 정검(政檢) 유착에 대한 반성이 나타난 것은 1980년대 후반의 일이다. 거세게 불어 닥친 민주화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정도(正道)를 걷는 검찰’을 시작으로 정의, 명예, 기본, 원칙, 인권 등이 검찰총장 복무방침의 핵심 단어로 등장했다. 1992년 노태우 정부 말기의 한 총장은 ‘국민의 검찰’이란 표현으로 이런 지표들을 아우르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총장의 복무방침은 ‘겉포장’에 지나지 않았다. 그럴듯한 구호가 퇴임사에선 대부분 회한(悔恨)으로 바뀌었다. 권력을 좇아 그 자리에 오른 태생적 한계도 있지만, 역대 정권의 검찰 통제가 그만큼 집요했다. 노무현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강정구 교수에 대해선 인권 보호를 내세워 불구속 수사를 지시했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세 번 구속돼 세 번 모두 무죄 판결을 받은 박주선 전 의원에 대한 검찰의 당초 방침은 불구속 기소였다고 한다. 당시 수사팀은 하룻밤 사이에 수뇌부의 태도가 바뀐 이유를 알고 있을 터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퇴진한 3명의 검찰총장을 보자. 자질 논란에 휩싸여 도중하차한 김각영 전 총장은 “인사권 행사를 통해 수사권을 통제하겠다는 새 정부의 의사를 확인했다”고 퇴임사에 적었다. 그 뒤를 이은 송광수 전 총장은 불법 대선자금, 청와대 주변 인사 비리에 대한 전 방위 수사로 팬클럽까지 생겼으나 사실은 임기 내내 칼날을 잡고 살았다. 그는 재임 중 “검찰 독립까지 총장 5명은 옷을 벗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고 “(대검 중수부가)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되면 내 목을 먼저 치겠다”고도 했다. 그리고 김종빈 총장은 송 전 총장의 ‘예감’대로 취임 6개월 만에 스스로 옷을 벗어야 했다.

이제 정상명 내정자가 복무방침을 내걸 차례다. 그는 17, 18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제35대 검찰총장에 정식 임명된다. 그가 ‘무너져 내린 검찰 중립의 꿈’을 복원할 수 있을까. 위태롭고 불안하다. 그에겐 ‘시대정신을 공유할 사람’이란 딱지가 붙어 있다. 문제의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천 장관과 청와대의 절대적인 인선 기준이 ‘변화의 주도’였다. 시대정신이 무언가. ‘정권 코드’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답은 간단하다. 검찰총장은 임명장을 받는 순간 임명권자를 잊어야 한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둘러대도 시대정신이 법 위에 있을 수는 없다. 복무방침도 넉 자면 족하다. ‘독립 검찰.’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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