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독립운동 양대대첩 청산리-봉오동전투 과장”

  • 입력 2005년 11월 9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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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운동사의 자랑거리로 꼽히는 청산리 전투의 전과가 너무 과장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장세윤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은 최근 발간한 ‘중국 동북지역 민족운동과 한국현대사’(명지사)라는 책에서 한국 독립운동의 양대 대첩으로 꼽히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가 신화화되면서 그 전과가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봉오동 전투는 홍범도 장군 등이 이끈 1000명 미만의 독립군이 1920년 6월 중국 지린(吉林) 성 허룽(和龍) 현 봉오동 계곡에 매복해 있다가 추격해 오는 일본군 대대 병력을 물리친 전투다. 청산리 전투는 1920년 10월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이 역시 허룽 현 청산리에서 3차에 걸친 전투로 수많은 일본군을 물리친 전투다.

장 연구위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중고교 교과서에서 봉오동 전투는 일본군 157명 전사, 300명 부상, 독립군 4명 전사, 부상 2명으로 돼 있고 청산리 전투의 경우는 일본군 1200명 전사, 독립군 60명 전사, 90명 부상 등으로 기술돼 있다.

장 연구위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내부 자료에는 일본군 전사자가 봉오동 전투 120명, 청산리 전투 600명으로 파악했으며 이 역시 과장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육사 출신으로 3·1운동 직후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투신한 김경천 장군이 청산리 전투 결과를 전달받고 일기에 “나는 우리 민족이 허언(虛言)을 좋아하며 실행이 따르지 않는 인성이 있음을 한탄해 왔는데 지금의 소식도 역시 마찬가지다”라고 기록한 것을 소개했다.

장 연구위원은 일본군의 기록에는 봉오동 전투의 경우 1명 전사, 2명 부상으로 기록돼 있고 청산리 전투는 전사 11명, 부상자 24명으로 한국 측 기록과 큰 격차가 발생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일본군 자료는 자신들의 피해를 너무 축소해 보고했을 가능성이 크며 여러 자료를 감안할 때 봉오동 전투에선 일본군 100여 명이 살상됐고, 청산리 전투에선 일본군 400∼500명 살상, 독립군도 그에 못지않은 피해를 본 것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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