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1호 재지정 논란]“숭례문 상징성약해” “왜 감사원이?”

  • 입력 2005년 11월 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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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崇禮門·남대문·조선 14세기)은 국보 1호로 약하다. 우리 전통 문화를 좀 더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문화재로 바꿔야 한다. 국보 1호는 상징적이기 때문이다.”

“국보의 번호는 중요도와 가치의 순위가 아니라 단순히 지정순서대로 붙인 번호에 불과하다. 문화재는 개성적인 특성 때문에 서로 우열을 매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국보 1호나 국보 100호는 모두 똑같이 소중한 것이다.”

국보 1호 재지정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유홍준(兪弘濬) 문화재청장이 2004년 9월 취임 후부터 국보 1호 재지정 방안에 남다른 관심을 표명하며 이를 비공식적으로 추진해 온 상황에서 감사원이 문화재청에 이 같은 방안을 권고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

국보 1호를 새로 지정할 경우,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문화재는 국보 70호 훈민정음(해례본), 국보 24호 석굴암, 국보 32호 팔만대장경 등. 특히 우리 민족의 얼과 정신이 담겨 있는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문화재인 훈민정음이 국보 1호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국보 1호를 재지정하는 데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이미 1996년 논란 끝에 현재의 국보 1호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는데 이제 와서 다시 재지정을 논의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조유전(趙由典·고고학) 동아대 교수는 “숭례문을 일제가 지정했을 때는 보물 1호였고 광복 후 우리가 국보 1호로 지정한 것이어서 일제 잔재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설령 문제가 있다고 해도 국보 1호를 새로 지정하는 문제는 학문적인 문제이지 감사원이 개입할 만한 사안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일부 전문가는 국보 1호를 바꿀 경우 혼란과 함께 많은 비용이 든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국보 1호 후보로 거론되는 것들 중 훈민정음은 사설 박물관인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어서 국민이 감상할 기회가 적고, 석굴암과 팔만대장경은 불교 유물이어서 다른 종교 신자들이 거부감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또 국보 1호가 바뀌면 역사 교과서는 물론 각종 관련 서적, 해외 홍보물, 관련 영상물 등을 모두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간다. 기업의 경우 단순히 로고나 브랜드를 새로 만드는 데만도 엄청난 비용이 든다. 지난해 7월 LG그룹에서 떨어져 나와 출범한 GS그룹은 새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광고비를 포함해 1000억 원을 쏟아 부었다. 특히 전국 3400여 개 GS칼텍스 주유소의 간판을 바꾸는 데만도 550억 원이 들어갔다.

또한 문화재적 가치를 기준으로 해서 국보 1호를 바꿀 경우, 훗날 더 중요한 문화재가 나타난다면 국보 1호를 다시 바꾸어야 한다는 논리가 되기 때문에 계속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이것은 통일이 되었을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국보 1호의 가치에 대한 다양한 의견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명목으로 학계의 의견을 무시하고 감사원을 비롯해 문화재의 가치 평가 업무와 관련 없는 기관이 직접 나서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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