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불타는 파리

  • 입력 2005년 11월 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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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의 금동근 파리특파원은 키만 좀 작다. 지난해 현지 부임 때는 키도 큰 여덟 살 연하의 여기자를 신부로 동반해 뭇 노총각의 부러움을 샀다. 그가 파리 빈민지역 소요 현장 취재에 나섰다가 시위 청년들에게 주먹질을 당했다. “근처에 차가 불탄 곳이 있다던데…”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금 특파원은 몸보다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아프리카계 청소년의 죽음으로 폭발된 빈곤과 차별, 소외에 대한 이민자들의 분노를 우리 특파원이 온몸으로 덮어쓴 셈이다.

▷두 달 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의 해묵은 인종 문제를 드러냈을 때 프랑스 언론은 사회 통합의 실패를 통렬히 비판했다.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을 자랑하는 프랑스에서는 아예 인종별 인구통계를 내지 않는다. 미국처럼 소수민족에 특혜를 주는 제도(affirmative action)는 금기로 돼 있다. 프랑스 시민은 인종과 상관없이 똑같은 시민이어야 한다는 ‘공화국 가치’ 때문이다.

▷시민을 보호한다는 ‘프랑스 모델’이 또 다른 시민들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역설적이다. 미국에도 수백만 명의 무슬림이 있지만 사회적 소외 문제는 유럽보다 덜 심각하다. 노동시장이 유연해 능력에 따라 취업할 수 있어서다. 반면 해고가 어려운 프랑스에선 근로자 한 명을 고용하는 데에도 심사숙고를 해야 한다. 같은 이력서를 내밀어도 아랍계나 아프리카계 이름으로는 취업이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직업이 없으면 꿈도 잃고, 심하면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게 된다. 젊은 실업자가 넘치는 사회는 그래서 위험하다.

▷좌파적 지식인으로 꼽히는 제러미 리프킨은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며 유러피안 드림의 승리를 선언했다. 사회공동체의 통합이 경제 발전보다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유러피안 드림의 성공 잣대로 아랍계와 아프리카계 이민자 문제의 해결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현실과 꿈을 외면하는 유럽 모델을 과연 유효하다고 할 수 있을까. 성장과 고용 없는 사회 통합이란 그야말로 날파리 목숨임을 불타는 파리가 보여 주고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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