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매제 폐지 농촌에선…“농사보다 쌀 팔기가 더 힘들어”

  • 입력 2005년 11월 5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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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나 친척들한테 쌀 사달라고 부탁하는 게 중요한 일과가 됐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에도 쌀을 판다는 게시물을 올려놨어요.”

경북 경주시 내남면에서 농사를 짓는 김진욱(29) 씨. 농민이지만 추수가 끝난 뒤부터는 쌀을 파는 상인이 돼 버렸다. 연락이 닿는 사람에게마다 쌀을 사달라고 부탁한다. 온라인 판매를 위해 인터넷 쇼핑몰 회원으로도 가입했다.

김 씨가 올해 생산한 쌀은 80kg들이 150가마. 공공비축용이나 농협 수매용 가격은 작년 수매가격(가마당 16만 원)에 비해 훨씬 싼 13만 원대여서 팔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그는 “인터넷 판매도 시원찮으면 인근 식당을 돌아다니면서 쌀을 팔아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해 추곡수매제가 폐지되면서 쌀을 직접 팔려는 농민이 늘고 있다.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다.

정부가 추곡수매제 대신 공공비축제를 도입해 작년과 비슷한 규모(500만 섬)로 쌀을 사주고는 있지만 문제는 가격이다. 작년에는 16만 원 하던 가격(80kg 기준)이 이달 초 현재 13만6000원까지 내려갔다.

직접 팔려는 농민이 증가하면서 인터넷 쌀 판매 게시물도 크게 늘었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 등록된 쌀 판매 게시물 건수는 1일 현재 350건에 이른다. 작년 이맘때의 2배가 넘는다. 이 쇼핑몰 물품 정보란에는 부모나 형제가 생산한 쌀을 판다는 사연이 줄줄이 올라 있다.

경기 평택시 청북면 최연용(60) 씨는 “아들이 인터넷에 게시물을 올렸다”며 “콩을 수확하고 내년 마늘농사를 준비해야 하는데 쌀을 팔아야 한다는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판매 실적은 좋은 편이 아니다. 대형 할인점이 농민들이 내놓는 판매가보다 낮은 가격대로 쌀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20kg짜리 쌀을 인터넷에 3만8000∼4만2000원에 올리지만 할인점에선 이보다 훨씬 싼 값에 판다.

이 때문에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들은 “대형 유통업체들이 쌀값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며 쌀 저가(低價) 판매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농림부도 최근 대형 유통업체와 간담회를 갖고 쌀 할인행사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쌀 판매를 돕기 위해 화환이나 부조금 대신 쌀을 보내는 사례까지 나타났다.

14일 결혼하는 개그맨 이승환 씨는 화환 대신 쌀을 받아 불우이웃에 기증할 예정이다. 전북농협은 신혼집으로 축의금 대신 쌀을 보내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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