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일본을 알려면 ‘아니메’를 보라

  • 입력 2005년 11월 5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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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안노 히데아키가 만든 1995년 작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결말 부분. 여주인공 레이의 형상을 지닌 주체가 마음의 벽을 허무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인위적 화합은 개인의 독자성을 파괴할 수 있다고 이 작품은 동시에 경고하고 있다. 사진 제공 루비박스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안노 히데아키가 만든 1995년 작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결말 부분. 여주인공 레이의 형상을 지닌 주체가 마음의 벽을 허무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인위적 화합은 개인의 독자성을 파괴할 수 있다고 이 작품은 동시에 경고하고 있다. 사진 제공 루비박스
◇아니메/수전 J 네피어 지음/484쪽·1만6500원·루비박스

다.

1993년 일본인 평론가 우에노 도시야는 유고내전으로 황폐해진 사라예보를 방문한다. 폭격 맞은 도시를 둘러보던 그는 무너진 벽에서 뜻밖의 그림을 발견한다.

미키마우스의 귀를 가진 마오쩌둥(毛澤東) 그림 옆에 놀랍게도 일본 애니메이션 ‘아키라’(감독 오토모 가쓰히로·1988년 작)의 한 장면이 그려져 있었던 것.

아키라는 가상의 3차대전 후 황폐화된 세상을 그린 음울한 애니메이션. 먼 이국 세르비아에서 아키라의 주인공 가네다는 ‘So it's begun!’(그래 시작이다)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즉 ‘아니메(anime)’의 영향력은 가히 전 지구적이다.

미국 텍사스주립 텍사스오스틴 대학에서 일본문화를 가르치는 저자는 ‘포켓몬’ ‘세일러 문’ ‘공각기동대’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우리에게 익숙한 애니메이션들을 포함해 애니메이션계에 획을 그은 작품들을 역사적, 철학적, 미학적, 심리학적 관점에서 다각도로 분석한다. 그러면서 아니메 속에 일본사회를 꿰뚫는 본질이 숨어 있음을 상기시킨다.

아니메는 디즈니 만화와 달리 인류 최후의 순간을 이야기하고 정신분열 환자의 살인을 다루며 섹스와 칼의 미학을 숭배한다.

사이버 펑크(Cyberpunk·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을 그린 장르)인 아키라에는 11세기 일본에서 성행했던 ‘말법사상(末法思想·미륵불이 세상을 구원)’과 생명의 덧없음과 삶의 비애를 강조한 일본 중세 문학이념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가 내재돼 있다.

또한 가학적인 일본 포르노그래피 아니메에 자주 등장하는 촉수성교(觸手性交) 장면은 1824년 풍속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두 마리 문어에게 성기와 입을 유린당하는 여자를 묘사해 그린 판화 ‘어부 아내의 꿈’의 그로테스크 이미지에서 유래된다.

돼지가 된 부모를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목욕탕에서 일하며 오물덩어리 신(神)을 씻겨주는 치히로(‘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행동은 입욕(入浴)이 단순히 신체를 씻는 행위가 아니라 생명을 재생하는 행위라는 일본 고유의 종교의식을 반영한다.

주요 아니메를 대부분 섭렵한 양적 방대함, 깊이 있는 질적 분석 모두 훌륭하다. 안타까운 점은 영상 이미지를 문자 텍스트로 풀이하다보니 ‘해석의 과잉’이 일어난 점이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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