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최민호]‘기생충알 김치’ 먹어도 안전한가

  • 입력 2005년 11월 5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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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거의 잊혀진 표현 중에 ‘회가 동한다’는 말이 있다. 먹고살기 어렵던 시절 밥 지을 때 솥단지에서 풍겨 나오는 구수한 냄새에 사람보다 배 속 회충이 먼저 요동친다는 뜻. 생리현상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조상들의 재치가 엿보인다.

장구한 세월 인간과 동고동락해 왔던 회충 등 장내 기생충이 장안의 화제로 다시 등장했다. 김치에서 회충 구충 동양모양선충의 알이 검출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기생충이 거의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국민에겐 충격이다. 중국산 김치에 이어 국내산 김치에서까지 기생충 알이 검출됐다는 정부 발표에 국민의 불안감은 점점 더 커지는 양상이다.

김치 속의 기생충 알은 건강에 얼마나 위협적일까? 말라리아 간디스토마 요충과 같이 건강에 해로운 기생충이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유행하고 있긴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검출된 기생충들은 비교적 병원성이 약한 종류다. 모든 기생충 알에 감염력이 있는 게 아니라 알 속에서 애벌레로 성장한 ‘자충포장란’만이 감염을 일으킨다.

또 감염되면 식욕부진 메스꺼움 구토 설사 복통 등과 같은 소화기계 증상을 유발하지만 감염 기생충의 수가 적을 경우엔 증상이 심하지 않다. 그리고 구충제로 간단히 치료된다. 물론 증상이 있거나 감염이 우려되는 때에는 반드시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치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많은 수의 회충에 감염되면 장내에서 덩어리로 뭉쳐 장 폐쇄증을 일으키거나 소장 이외의 장기로 이동해 수술이 필요한 합병증을 유발하기도 하며, 구충은 철 결핍성 빈혈을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음식물에 기생충 알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먹기엔 꺼림칙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공포감에 휩싸일 정도로 위험하지는 않다. 솔직히 필자는 감염되더라도 증상이 그리 심하지 않고 쉽게 치료되는 회충, 구충보다는 체내에 두고두고 쌓이다가 언젠가는 심각한 임상증상을 유발하는 납 등 중금속이 더 무섭기만 하다.

회충의 감염률은 0.05%, 편충은 0.28%, 구충은 0%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기생충 감염은 큰 문제가 되고 있지 않다.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앞으로 농산물 수입 및 식품 가공 과정을 철저히 관리한다면 적어도 회충 편충 구충과 같은 토양매개성 연충 감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음식물이 기생충 알과 같은 감염성 물질에 오염돼 있다는 사실은 분명 우리의 식품위생관리 시스템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증거다. 국가 간 교역과 국제여행이 보편화돼 외국에서 유행하는 각종 질병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특히 보건 및 검역 당국의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는 기생충과 같은 병원체들은 조금만 방심하면 다시 감염률이 증가하는 특성이 있다. 만약 이번 사태가 터지지 않았더라면 우리도 모르는 새에 회충이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기생충 관리를 위해 쏟아 부었던 예전의 노력을 되풀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이번 사태는 좋은 학습 기회가 됐다고 생각한다. 학습효과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식품 종사자들은 내 가족이 먹는 음식을 만든다는 심정으로 위생적인 음식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고, 당국은 농산물 및 가공식품에 대한 검역을 철저하고 지속적으로 실시해야 할 것이다.

국민이 더는 음식물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느닷없는 김치의 기생충 알 파동 때문에 입맛을 잃어버린 국민이 하루빨리 ‘회가 동하는’ 음식으로 입맛을 되찾고, 근심 걱정을 모두 떨쳐 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최민호 서울대 의대 교수·기생충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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