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성훈]베이비부머여 제2의 도전을

  • 입력 2005년 11월 5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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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실도 없이 늙어 온 남자가 후드득 후드득 비를 맞는다. 커다란 초조 속에서 깜짝깜짝 놀라면서 비를 맞는다.’(최승호의 ‘여우비’에서)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을 전후해 필자는 태어났다. 필자와 비슷한 나이의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는 이 엄청난 사건들을 통해 장차 삶이 순탄하지 않을 거라는 집단적 계시라도 받았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고교평준화와 대학졸업정원제의 실험 세대가 됐고 20대에 5·18민주화운동과 6월 민주항쟁을 겪었다. 사회 진출 직후 주가지수 1,000에 현혹돼 받은 우리사주가 노비문서가 돼 옭아맸고, 대출 받아 장만한 생애 첫 아파트는 외환위기 직후의 초고금리에 치여 팔았다. 벌써 평균수명이 70세를 넘었고 우리 세대는 90세까지 산다는데 직장에서는 언제 잘릴지 모른다. 가진 재산은 아파트 한 채가 달랑. 가을 때문인가, 낙엽 때문인가. 문득 삶이 스산해진다.

어느덧 떠날 날을 준비해야 하는 베이비부머여, 하지만 회한(悔恨)만 되씹다 명퇴 통보를 받을 셈인가? 6월 민주항쟁 당시 서울시청 앞 광장을 뒤덮던 우리는 불꽃처럼 젊었는데, 질풍노도의 삶이었는데…. 그때의 기개로 다시 한 번 시작할 수는 없을까?

두어 군데 직장을 전전하던 필자는 이제 헤드헌터다. 기업이 원하는 사람을 찾아 주는 일을 한다. 그 경험을 밑천 삼아 꺼내는 얘긴데…. 우선 그동안 온갖 이유로 억눌렀던 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잘 생각나지 않는가. 그럼 뭘 할 때 가장 신났는지 떠올려 보자. 더는 시간도 없다. 좋아하는 것을 해야 잘할 수 있고 잘해야 돈도 벌 수 있다. ‘인생의 전반전이 성공을 추구하는 기간이라면 후반전은 의미를 찾아가는 여행’이라는 밥 버포드의 말은 여러 모로 시사적이다.

둘째, 하지만 모든 꿈이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자리에서 5년 정도의 시간이 있다면,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그것을 위해 뭘 준비해야 하는지 시간표를 짜고 실행에 옮기자. 인생의 전반기 45년을 위해 25년을 교육에 투자했다면 후반기 45년을 위해 최소한 5년은 준비하자. 지금의 자리가 새로운 계획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이동이나 전직을 고려해야 한다.

셋째,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국내의 평균적인 은행원들은 기획 대출 예금 외환 등 온갖 분야를 다 거쳤다. 하지만 재고용시장에서는 기획전문가, 대출전문가, 예금전문가, 외환전문가가 필요할 뿐 제너럴리스트는 찬밥이다. 프로젝트파이낸스 전문경력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1인 컨설팅 회사를 차려서 평생 오너로 살 수 있다.

넷째, 직장 내 네트워킹을 줄이는 대신 추구하는 분야의 외부 전문가들과 인맥을 만들라. 그들과의 정기 공부모임은 지적인 자극을 주며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데 있어 실패 확률을 줄여 준다.

다섯째, 실무에서 손을 떼면 안 된다. 당신이 투자신탁사에 근무한다면 일정 규모의 펀드를 직접 운용하면서 투자의 감을 유지해야 하고, 종합상사에 근무한다면 직접 관리하는 고객사가 2, 3개는 있어야 한다. 실무에서 멀어지는 순간 고용 가능성은 뚝 떨어진다.

이제는 익숙한 것과 결별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인생 후반전은 ‘모 그룹 상무’ 등의 직함 없이 아무개라는 이름 하나로 살아가야 한다. 조직의 후광(後光)과 본인의 능력을 구분해야 하고, 지금 만나는 사람이 두고두고 도움이 될지 물어봐야 한다.

미국의 샘 월턴이 1962년 첫 월마트 상점을 개점했을 때 44세였다. 미켈란젤로가 성 베드로 성당의 수석 건축가로 지명되었을 때 71세였고, 미관말직을 떠돌던 이순신이 독자적인 작전권을 가진 전라좌수사가 된 게 47세였다. 당신의 인생이 벌써 종쳤다고 생각하는가?

이성훈 콘페리 인터네셔널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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